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ㅣ 슬픔에도 상을 주네요

2015-07-1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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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키워지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였던 보봐르 부인이 이런 말을 선언했을 때, 하도 온 세상이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서러울 때라 열렬히 그 말이 믿고 싶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 동네에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서 미국 의사에게 갔는데 은퇴를 앞둔 늙은 할아버지 의사는 번번히 또 아들이라고 했다.


남자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는여자아이하고 다르단다. 더 무겁고 힘차단다. 그 시절엔 아직도아들 낳는 며느리가 떳떳한 며느리였으므로나름 뿌듯했다.

두 아들을 키워보고 나서 여자와 남자는금성인과 화성인처럼 원래 다른 종자라는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여자애들은 노는 것도인형 같은 걸 갖고 도란도란 노는데 사내들은 그저 치고 박고구르고 뛰고.. 아아 힘들어! 손자놈은 생긴 건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하는 짓은 사내중에도상사내다.

이를 앙물고 두 주먹 불끈쥐고 덤벼들 때면 코뿔소가 뿔을들이대며 달려드는 것 같아 할머니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바쁘다. 주먹도 얼마나 쎈지 살살꼬셔서 등짝 좀 두들겨 달래면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무리 꼬마래도 남자는 다르다. 티브이나 게임도 온통 때리고 쏘고 박치기하는 것만 본다.

가끔 어른들이 보는 영화에로맨틱한 분위기가 나오면 뭐가오글거리는지 지 맘대로 채널을돌리며 못보겠단다. 그런데 히한하게도 ‘빨강머리 앤’ 만화영화는 본다. 너 여자애들 나오는 거싫어하잖아? 하니까 무구한 얼굴로 ‘난 그 sad part 가 좋아’ ,한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해도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깊은 슬픔에 대한 경외심은 같은가 보다.

문학상을 받았다. 그저 글 읽는 게 좋고 글 쓰는 게 좋아서썼지 거창하게 문학이란 이름까지 들먹일 주제는 못되는데 어떻든 상은 기분 좋은 것 같다. 인간이 모두 하나 하나 경탄하게다른 거라는 깨달음은 살수록진해지는데 모두들 모든 상황에서 자신에게 제일 쉬운 길을 택한다.

나는 어렸을 때 숙제를 해가는 대신 맞는 게 더 쉬웠고 매일같은 과제를 되풀이 하는 것보다 땡땡이 치는 게 더 쉬웠다. 하고 싶은 일 아니면 죽어도 하지못하는 노새같은 고집속에서 누가 하지말래도 할수 있었던 게그림과 글이었다.

나보고 밥장사를 하라고 했더라면 할수 있었을까? 나보고 리얼터를 하라고 했더라면 할수 있었을까? 나보고좋은 보수을 제의하며 직장생활를 하라고 했더라면?


노 환 이심 해 지 자아예 곡기를 끊어버린 노인이 있었다. 주위에서 어쩌면 저렇게독할 수 있냐고 했지만 그는 공황장애가 있었다. 혈압을 재려팔뚝을 묶는다거나 링겔병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거나 침대에 묶어 놓는다거나 하는 걸 상상만으로도 못견뎌했다.

오죽하면 한번 끼어 본 반지가 안 빠졌을 때미친듯이 펄펄 뛰며 나 죽는다고, 빨리 칼로 손가락을 자르라고 미쳐 날뛰었다. 본인은 알았을 것이다. 차라리 곱게 곡기를끊는게 자신에게 덜 힘든 거라는 걸.

누가 누구의 아픔을 안다고할수 있을까? 이름없는 꽃 한송이에 이름을 붙여 둘도 없이 소중한 꽃으로 만들어 낸 시인 김춘수는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왜 나는 시인인가,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나는 시인이다.

사람이란 더없이 슬픈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깊이깊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나의 슬픔을 글로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쓰면서 너무 슬프고아팠기 때문에 상을 받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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