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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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과 밤마다 목숨건 사투”

2015-06-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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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 발발 65주년 특별기획 - 내가 겪은 6.25

▶ 서부전선 지켜낸 최병석 6.25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장

학도호국단 출신, 교사 재직 중 신병교육대 배치
서부전선서 최후방어선 구축 한달간 밤마다 전투
아직도 이맘때면 먼저 간 전우들 모습 떠올라

6.25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의 최병석(87·사진) 회장. 최 회장이 65년째 간직해 온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패기 넘치는 모습의 20대 군인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서부전선 제15연대 5중대 3소대장 소위 최병석. 그 당시 최 회장의 관등성명이었다.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소대원들을 이 가슴에 묻은 지 벌써 65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면 그만 무뎌질 만도 하건만 아직도 그 친구들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기만 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25일. 당시 최 회장은 학도호국단 출신으로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목포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교련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최 회장은 해군 경비선에 몸을 싣고 곧장 울산에 위치해있던 19연대 신병 교육대로 배치됐다.

"매일 수 천명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교육대에 줄지어 들어왔죠.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불과 사흘간의 교육훈련만을 마친 뒤 모두 최전선으로 보내졌어요. 아까운 젊은이들이 그저 총알받이로 내몰린 셈이었죠."

울산과 목포의 교육대를 오가던 최 회장 역시 인천 상륙작전 후 쫓기던 북한군이 중공군과 연합에 다시 남하하자 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서부 전선에 배치됐다.
최 회장은 "1952년 10월 말부터 우리 부대는 백마고지 바로 옆 경기도 연천 부근의 358 고지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 중공군들과 대립했다"며 "이 고지가 뚫리면 서부전선 전체가 위험해지는 요충지였다. 한 달간 매일 밤마다 적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대장을 거쳐 15연대 5중대장을 맡고 있을 때였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중공군들이 고지를 빼앗기 위해 벌떼처럼 산등선을 타고 올라옵니다.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암흑 천지 속에서 서로 미친 듯이 총을 쏴대다 보면 어느새 미명이 밝아옵니다. 그때쯤 중공군들이 다시 퇴각하기 시작하죠. 그럴 때마다 혹시 우리 중대원 중 사상자가 없는지 여기저기 쌓인 시체사이를 뛰어다니곤 했었습니다."

최 회장은 "그렇게 우리는 고지를 지켜냈고 결국 전쟁은 국군과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남겨진 것은 씻기지 않는 피비린내와 아물지 않는 상처들 뿐이었습니다"라며 "아직도 이맘때가 되면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던 소대원, 중대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저를 비롯해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영원한 빚을 지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도 조국을 갖고 있고, 그곳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까요"라며 말끝을 흐렸다.<천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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