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세에 완성 바로크시대 역작
▶ 400년 세월에도 위엄 살아있어
라크마에서 전시 중인 베르니니의 ‘남자의 초상’.
바로크 조각의 거장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교황 요한 바오로 5세의 흉상’.
■ 게티 미술관 ‘교황 요한 바오로 5세의 흉상’ 구입
게티 미술관이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조각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의 ‘교황 요한 바오로 5세의 흉상’(Bust of Pope Paul V, 1621)을 사들여 빅뉴스가 되고 있다.
베르니니는 미켈란젤로 이후 최고로 꼽혔던 천재조각가 겸 건축가로, 고전적 엄격성을 지닌 우아하면서도 생명감이 넘치는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조각뿐 아니라 성당과 궁정의 건축, 분수, 장식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으며, 로마에 가면 누구나 보게 되는 성 베드로 성당 앞의 열주랑과 광장, 로마 시내의 많은 분수가 그의 설계로 지어진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5세의 흉상’은 베르니니의 후원자이며 교황의 조카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의뢰로 불과 23세의 나이에 완성한 작품으로, 바로크시대의 초석으로 꼽히는 역작이다. 2.5피트 높이의 이 흉상은 한 덩어리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살아 있는 듯한 표정과 정교한 교황 법복의 장식 표현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대가의 솜씨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더구나 베르니니의 초기작이어서 조수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작업한 조각품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에서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베르니니는 1632년 후원자 보르게세 추기경의 흉상도 제작, 이 두 조각품은 19세기 말까지 250년 넘게 보르게세 가문이 소장해 왔다. 이 작품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893년, 경매에서 비엔나의 한 소장가에게 팔렸으며,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동안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 간의 거취와 소유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2014년 다시 경매에 등장, 한 컬렉터가 구입했다.
LA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게티는 지난 3월 런던 소더비로부터 연락을 받고 구입에 나섰다. 구입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엄청난’ 가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오래된 대리석 조각은 깨지거나 갈라진 상태를 보이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교황의 흉상은 거의 400년이 지났음에도 놀랄 만큼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술학계에서는 이번 게티의 구입을 ‘대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기록과 사진, 청동 주조상(코펜하겐 뮤지엄 소장)으로만 보아왔던 작품의 오리지널을 400년만에 소장하게 됐으니 말이다.
현재 미국 내 베르니니의 조각작품은 LA카운티 뮤지엄(LACMA)이 최근 50주년 기념 선물로 소장하게 된 ‘남자의 초상’(Portrait of a Gentleman, 대리석, 1670-1675, 현재 전시 중)과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프란체스코 디 카를로 바르베리니’ 흉상,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있는 초상이 아닌 대리석 작품과 포트워스의 킴벨 미술관의 테라코타 조각품이 전부다.
남가주로서는 최근 몇 달 사이에 라크마와 게티가 잇달아 희귀한 조각품을 소장하게 됐으니 큰 경사라 하겠다. 라크마의 ‘남자의 초상’은 아만슨 재단이 기증한 것이다.
게티는 ‘교황 요한 바오로 5세의 흉상’을 지난 18일부터 이스트 파빌리온의 이탈리안 바로크 갤러리에서 베르니니의 다른 소장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게티가 소장하고 있는 베르니니의 작품들은 그가 조각가였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와 함께 제작한 ‘용과 소년’(Boy with Dragon, 대리석, 1617), ‘넵튠과 돌고래’(Neptune with Dolphin, 청동, 1623), 그리고 2점의 드로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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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