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로부터 학기말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림을 전공하고 있기에 당연히 교수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그에 따른 질문과 응답이 오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이 들려준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은 그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딸이 교수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던 것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무엇을 더 배우고 추구해 나갈 것인지를 요약한, 일종의 자기 평가였다.
지난 1년 동안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이따금 유학결정을 후회하는 듯한 내색을 비쳤던 딸도 이번만은 “재미있었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딸의 주된 불만은 “교수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학교가 (비싼 등록금만 받고)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볼 멘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 학교의 교육 방향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내공을 길러주는 일,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나 똑같이 중요하겠지만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덕목일 것이리라.
하지만 자식 인생을 자기 인생보다 중시하고, 주입식 교육과 등수 매기기에 익숙한 대다수한인 부모들에게는 자녀가 스스로 내공을 쌓아가도록 기다리는 일이란 매우 지루하고도 요원한 수행이다. 딸이 학부에서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게 못내 불안했던 나 역시 애써 조바심을 감춘 채 넌지시 묻곤 했었다.
“교수님은 뭐라고 하시든? 다른 아이들은 너 보다 잘하는 것 같아?”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인부모들에게는 “당신 아이는 100명 중 몇 등”이라고 알려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심이 되는 평가 방법일 것이다. 그래야 과외를 시키든지 학원엘 보내든지 대책을 세울 것이고, 자녀의 진로를 ‘기획’할 것 아니겠는가.
요즘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자녀에게 수강할 과목을 코치하고, 자녀가 받은 학점에 항의하러 교수실을 찾아오는 엄마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요즘에는 엄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자녀를 ‘관리’하는 ‘로드 매니저’ 역이라고 하겠는가.
로드 매니저의 역할은 자녀가 취업을 해도 계속된다. 한국의 대기업에 근무 중인 어떤 지인은 자녀를 대신해 결근을 알리는 신입사원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황당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나 역시 줄곧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어찌되었을지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숱한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자녀는 부모의 기획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책 제목을 보고 무릎을 탁친 적이 있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딸아이에게 좀 더 많은 실수의 기회를 허락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가 더디더라도 스스로 깨닫고 성장해 나가기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을 것이다.
행복은 불행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관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했다. 닥치는 불행을 인간의 능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고, 기껏해야 닥쳐온 불행에 대처하는 능력 정도가 인간에게 남겨진 몫일 텐데, 그 능력은 엄마의 조바심이나 다그침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노 대국의 저력을 엿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