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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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민물고기

2015-05-04 (월)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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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투막 구조의 피부를 가진 민물고기는 바다로 가면 몸속의 수분을 모두 빼앗겨 죽고 만다. 이는 체내 염도가 밖의 염도보다 낮아 발생하는 삼투압 현상 때문이다.

오늘날 바닷물을 정수하는 기술이나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용 정수기도 이런 원리로 작동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독일의 화학자 모리츠 트라우베다. 그가 삼투압 현상을 발견한 1867년 훨씬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원리를 생활에 적용하고 있었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면 농도 평형 때문에 저농도의 배추 세포 속 물이 고농도의 소금물 쪽으로 빠져 나오면 수분이 빠진 배추는 부피가 줄어들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러한 원리를 깨닫고 있었는지 지혜가 놀랍다.

지금 한국은 성완종 스캔들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취임한지 석 달도 안 된 총리가 불명예로 물러나고 자신은 결코 치사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항변하던 김기춘 전 실장은 이후 하나씩 밝혀진 정황들로 한풀 죽은 모습이다.


사실로 밝혀지면 목숨을 내놓겠다 큰소리 친 총리와, 메모 날짜와 자신의 출국 일에 며칠 차이가 있음을 빌미로 망자의 근거 없는 모함이라 매도하던 김기춘 전 실장의 현실 인지능력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은 자는 반박할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을 염두에 둔 그들의 처신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터지는 권력형 부패사건은 정치세력인 정당들이 과거의 썩은 뿌리에 기반을 두고 답습해온 숙명적 결과다. 정경유착의 부패는 정치가 사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비리다. 70~80년대 최대 특혜는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 땅을 사면 인플레이션으로 이자는 상계되고 자고나면 땅값이 오르니 큰돈을 빌리기 위해 권력이 필요했었다. 특히 개발정보나 대규모 국책사업과 직접 연관이 있는 건설회사는 어느 권력과 결탁하는가에 사업의 성패가 달렸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던가.

성완종 전 회장은 가난한 형편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바닥부터 시작해 굴지의 건설사인 경남기업을 인수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그러나 마지막 그의 모습은 마치 몸속의 수분을 완전히 빼앗긴 민물고기처럼 거덜이 났다.

자장면 값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복채가 없어 동행한 지인이 대납을 했다니 그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사업에서 제법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갔다 알몸으로 던져지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활동했던 물과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얻어진 당연한 결과라 생각된다.

그들이 정치판에 끼어들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일 것이다. 첫째는 자신의 경영능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정치력을 이용해 극복해 보자는 얄팍한 속셈의 부류와 둘째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 알아주기를 바라는 과시형 인간들이다. 진정으로 성공한 경영자는 자신의 모든 것이 털릴게 뻔한 농도가 다른 물로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하지 않는다.

기업인 최대의 영예는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며 세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양성된 인제들의 능력은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로 직결된다. 따라서 훌륭한 경영자들을 배출시킨 나라의 국민들은 결코 궁핍하지 않았고 반대의 경우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는 전투기와 탱크 함정도 기업에서 만든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기기나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모든 제품들 역시 기업에서 연구 생산된다.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영자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나라는 지구상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조금 살만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권력자의 치적으로 귀결되고 불황에 실업률이 올라가면 기업들이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 비판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치사한 인간들이라고 마지막까지 그토록 경멸했던 정치인이 되기 위해 모든 걸 잃은 성완종 회장. 그는 스스로 더 큰 치사함의 굴레를 쓰고 비극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업 경영자들에게 경고를 주기에 충분하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경영자가 그 세금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을 올려다 볼 필요가 무엇인가. 제발 그가 바다로 간 마지막 민물고기가 됐으면 한다.

<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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