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살면 살수록 세상 모든 게 오묘하니 말야. 저런 옷을 도대체 무슨 연유로 몸에 걸치고 싶을까 싶은 옷을 너무나 애지중지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돌솥비빔밥의 물컹한 질감이 나는 싫은데 울 남편은 좋아하고, 나서는 맛에 세상 사는 이가 있나 하면 누가 등 떠밀어 앞에 내세울까봐 변소 속에 숨는 이도 있고.
얼마 전,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를 읽었어. 너무 재미있었는데 친구에게 빌려주니까 잔인하고 처참해서 싫다는거야. 내가 잔인한 사람인가? 머쓱했지. 하긴 생명을 가진 모든 생존방법은 잔인한거 같애.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동물뿐 아니라 우리 인간도 태어날 때부터 각기 받은 그릇이 있는 거 같아. 잭 런던의 책을 봐도 썰매 개 중에 앞에 세워야 할 놈이 있고 뒤에서 받춰주는 역을 할 그릇이 있다는 거야.
시튼 이야기에서 읽은 빙고라는 개 얘기를 해줄께. 어렸을 때부터 별다른 장점을 보이지 않던, 오히려 그저 게으름뱅이같이 보이던 녀석이 어느날 주인이 덫에 걸리게 되자 결사적으로 달려와 두 눈에 불을 활활 태우면서 단 한입에 카요태 무리를 물리치고 주인을 살려 내더라는 거야. 그러면서 자신이 죽는 순간이 오자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주인 앞으로 기어와 쓰러지는 거야. 그 충절과 끈끈한 정, 너무도 슬프고 가슴 뭉클하지 않니?
역사 속에선 영웅이라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나 징기스칸, 나폴레옹 등의 일생을 읽으면 나는 무서워. 살아온 날 중 거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남죽이고 내 편 살려내고... 어떤 인물은 전쟁터엔 딴 사람 보내고 자기는 후방에서 맛있는 것 먹고 편한 잠 자면서 승전의 소식만 기다리다 승리의 열매만 맛보고자 하는 이도 있을텐데 왜 그 사람들은 신이 나서 칼 휘두르며 뛰어 다녔을까?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기절 한번 안하고 씽씽한 용기를 지닌 걸까?
나폴레옹은 초상화라도 굴러다니지,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은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 정말 볼 수만 있으면 한번 보고싶어. 상상도 안돼. 잘생겼을까? 흉악하게 생겼을까? 그렇게 용맹하다는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다르게 생겼을 것 같지 않아? 먹을 게 없어 죽어가던 우리를 수백년 넘는 배고픔에서 구해주셨다는 그 대통령도 국민에 대한 사랑이 넘쳐 물불 안가리고 고군분투 했을 텐데 그 투지가 보통이겠어? 그래서 그런걸까? 웬지 무서운 결기가 서려있는 것 같아 사진만 봐도 어렵잖아. 생전 웃지도 않을 것 같애. 그런 그릇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으로는 아무리 애국하는 길이라해도 상상만으로도 지레 죽을 일이야.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나는 가끔 그 애를 어떤 그릇의 사람으로 하느님이 만들어내셨을까 참 궁금해.
한번도 본적이 없는식물의 꽃망울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꽃이피어날까, 설레며 기다리는 기분이야. 티브이에서 보면 정말로 자신 있어뵈고 연설도 끝내주게 잘하고 그 모든 복잡한 세계 정세속에서도 서릿발같은 영도력으로 우릴 지켜줄 것만 같은 대통령도 어렸을 땐 옹알이 하고 응석도 부리고 했겠지.
영웅들은 그렇다치고 나쁜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몇년 전에 일어난 일이잖아. 샌디훅이라는 초등학교에 웬 청년이 자기 엄마를 쏴 죽인 후 부르르 그학교로 쫒아와서 유치원 애들을 스무명이나 하나 하나 조준해 사그리 쏴 죽인 일. 그 애는 태어날때부터 나쁜 애였을까? 상처가 너무 커서, 너무 아파서 그렇게 된 걸까? 나는 지금도 그 일이 떠오르면 잠이 안와. 어쩌면 좋으니. 그이쁜 애들. 그 식구들. 그리고 나처럼 아무 상관없이 뉴스를 통해서만 듣고도 넋이 나갈 것만 같은 사람들.
미국은 도대체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 기막힌 일이 일어나도 총기규제가 되지 않는거야. 정말 세상 살면 살수록 모르겠어. 인간이 뭐지? 인간이 바라는 게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