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성인아이는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생각이란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품을 말합니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방향타와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늘 유치하면 유치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하는 수준대로 세상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평소의 생각조차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유치하면 행동도 또한 유치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늘 사고나 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생각 좀 하고 살아라.’입니다.
어린 아이의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끊임없이 사랑받고, 이해받고 관심을 받고 싶은 극도의 이기적인 인간이 됩니다. 이웃이 사랑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사랑이 없다고 불평과 투정을 부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내가 먼저 사랑할 수가 없는가? 왜 나는 늘 받으려고만 하는가? 왜 나는 더 희생하지 못하는가? 왜 나의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나는 화가 나는가? 왜 나는 내 남편이나 아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들이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어린 아이의 생각, 이기적이고, 파괴적이고, 죄를 향한 열망을 가진 생각들을 버리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생각을 많이 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라지 못한 부분을 자라게 하고, 상처가 싸매어지는 것을 치유라고 합니다. 그 상처란 것이 인간의 힘으로 회복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자라지 못한 부분을 자라게 하며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궁극적으로 주 안에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상처가 회복되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가진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상처 입은 영혼들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도 바로 그 상처 입은 영혼을 회복하고 치유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약속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도 주님은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단지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십자가로 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고, 회복을 경험하고, 축복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권능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단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문제까지 치유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의사들이, 상담가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을 주님이 해결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치유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남녀가 가정을 이루면 성숙한 가정이 됩니다. 성숙한 가정이 모이면 성숙한 교회가 되고, 성숙한 사회가 됩니다. 가정이 변화되는 것은 그저 사랑하라, 참고 살아라, 희생하라는 식의 율법 교육으로는 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린 아이의 요소를 버리고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성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체만 어른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