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흔적 (김옥교 / 시인)

2015-04-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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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생의 삶이 끝나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어떻게 산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요즘 세상은 사람들의 명이 길어져서 백세 시대를 맞았다고 모두들 호들갑을 떤다.

옛날 우리가 어린 시절엔 한동네에서 노인들이 육십세를 넘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나이 육십이 되면 환갑잔치를 했다. 요즘엔 칠십 잔치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렇듯 사람들의 명이 길어진 것이 꼭 축복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건강이 있고 돈이 있고 속 안 썩이는 자식들과 적당히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있을 때, 또 늘 옆에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을 때 이 모든 것들은 가능하다고들 말한다.


미국에서도 은행에 예금이 몇 천 달러가 되는 사람들이 드물고 한국은 이런 사정들이 더 형편없다는 통계가 나왔다. ‘노인들은 밥 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한 단어를 더 붙여서 ‘노인들은 돈 힘으로 산다’라고 말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힘이 없어진다. 노인들이 죽을 때까지 자긍심을 가지고 살려면 적당히 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돈은 필수적이다.

요즘엔 돈을 많이 벌었거나 명예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해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했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 그 대신 자기만의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일을 성취하고, 주위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위 성공을 했다는 유명한 인사들이 비리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감옥을 가거나 또 불행히도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며 정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마지막 삶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하게 살면서도 친지나 친구들, 이웃들에게 인기가 있고 좋은 영향을 끼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도 좋지만 그들이 떠날 때, 즉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거나 아주 이 세상과 하직할 때 그 진가가 나온다.

떠들썩하게 인생을 살지 않으면서도 주위를 늘 훈훈하고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오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이 우리들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귀는 늘 고국을 향해 열려 있고, 우리들의 마음은 늘 고국으로, 그리운 고향으로 달려간다. 우리 1세들은 아마 백년을 살아도 결코 미국인들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좋던 싫던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죽으면 이 땅에 묻힐 것이다. 너 나 없이 자식들은 이미 미국 땅이 고향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2세들이 이젠 주류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인정받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이 겉으로만 보이는 성공이 아니라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진정한 성공, 즉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싶다. 이것이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1세로서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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