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에서는 ‘바르도’라는 것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머물며 해탈과 윤회를 가르는 시험을 치룬다고 한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바르도’라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승과 저승… 해탈과 윤회… 이런 것들은 아마도 상상력에서 나온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광활한 밤하늘의 별빛… 그 장관에 비해 세상은 너무도 비참하고, 기어다니는 벌레… 어쩌면 지옥도란 세상을 비쳐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일 후기 낭만파 사람들은 예술에서… 특히 음악 등을 ‘바르도’라 믿었던 것 같다. 즉 예술의 바르도를 거친 사람들이야말로 해탈…
즉 초극의 세계로 나아가는 진정한 인간(영웅)으로 거듭난다는 따위… 굳이 말하자면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한 신념이었는데, 말하자면 낭만주의의 골수 분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후기 낭만파의 사람들(대략 1870-1940)은 음악을 특히 신성시했고, 정서적인 위무뿐 아니라 음악의 의무라 할 수 있는 찬양(종교의 도우미)등의 역할에서 벗어나 음악이 스스로 그 구도의 주체로서, 무한한 영적인 파워를 믿게 되었다.
특히 낭만주의는 후기로 갈수록 더욱 과장되고 복잡 기괴한 형태로 부풀려져 거대한 氣싸움으로 발전하는데,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처절한 전쟁 한 복판에서 스스로와의 피 튀기는 싸움에서 승리해야했다. (물론 여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당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적 초인(?)들은 그만큼 힘들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일그러진 초상이기도 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등을 역으로 해석하면 과거의 이념이나 철학을 몽땅 부수어 버리고 그 초토화된 재 위에서 새 철학을 건설하자는… 종교 등에 박탈 당한 주권회복, 즉 인본주의적 초인으로 나아가자는 이념으로, 정상적인 이성에 비추어 보면 다소 황당한 비약과 과장이었지만 음악 등에 미쳐있던 니체로서는 그 가치의 정당성이나 진위야 어떻든간에 예술을 통한 바르도를 거치지 못한 인격이야말로 이등 인격… 즉 상대할 가치 없는 인간으로 평가 절하했다.
(비판자들의 입장에선) 이같은 장단에 춤췄던 자들이 바로 리하르트 쉬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같은 작곡가들이었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선 이러한 풍조에 동조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이러한 음악적 영웅들의 탄생이야말로 다소간 시대의 산물… 그만큼 산다는 문제가 힘들었고 또 절실했던 만큼 절망도 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지 몰랐고, (음악에서의)영웅시대는 이런 혼란의 극함 속에서 비로소 열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음악(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에 역행하는,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어쩌면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의 허망한 여행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특히 낭만주의 음악들… 그 영웅이 되기위한 몸부림이야말로 너무도 버겁고 찬연했지만, 영혼이 젊었기 때문에 그 얼음같이 찬 고독(?)의 세계를 마치 부화孵化의 바르도 처럼 나름 도전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자아와의 피튀기는 전쟁 영웅들… 영혼을 음악에 몽땅 팔아버린 R. 쉬트라우스같은 음악에 한번 심취해 보지 못한 자들과 과연 오늘날… 인생을 논할 수 있을까?R. 쉬트라우스(1864-1949)는 1898년 자기 자신을 빗댄 ‘영웅의 생애’라는 제목의 교향시를 작곡,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교향시’라고 극찬받았다.
작품은 모두 6개 부문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1부 영웅(Der Held) : 쾌활한 곡으로 영웅의 모습을 제시 , ▶ 2부 영웅의 적수(Des Helden Widersacher) : 영웅과 인간의 대립, ▶ 3부 영웅의 애인(Des Helden Gefahrtin) : 바이올린 독주의 선율로 영웅의 반려자를 표현 ▶ 4부 영웅의 싸움터(Des Helden Walstatt) : 트럼펫 등으로 영웅의 모습과 개선장군의 위풍당당함을 표현 ▶ 5부 영웅의 평화 사업 (Des Helden Friedenswerke) : 영웅의 업적을 표현 ▶ 6부 영웅의 은퇴와 완성 (Des Helden Weltflucht und Vollendung) : 목동의 피리 소리를 연상케 하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여생을 평안 속에 보내려는 영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웅은 옛날의 투쟁을 회상하며 더 이상 투쟁도 정열도 없이 다만 평화와 위안, 정화와 도취 속으로 해탈해 갈 따름이다. (연주시간 : 약 4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