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는 흘러간 유행가나 사대부의 음풍영월이 아니다”
▶ 시조는 한국인의 맥박, 시조를 사랑하라
하버드대학 맥캔 교수 영어시조운동 전개
부처의 생명존중 사상으로 전쟁 막아야
‘절간에 부처가 없다’한 것은 ‘기복 불교를 버리자’고 한 말
권: 큰스님의 <허수아비>라는 시조를 들어보니 무욕청정하게 사시는 스님의 자화상이 무슨 영상처럼 선명합니다. 정말 저 멀리 바라보고 두 팔 쫙 벌리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 다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곳 버클리 대학에는 세계적인 학자들과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허수아비의 그 텅 빈 하늘까지도 끌어안는 지혜로운 말씀을 한 가지 더 들려주시지요.
조:교수님 말씀과 같이 세계적인 학자님들 우수한 학생들이 죽을 일만 남은 산중 늙은이의 말을 들어 무엇 하겠습니까? 이분들은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분들입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사서삼경이나 팔만대장경도 다 압니다. 요즘은 인터넷인가 뭔가 하는 시대라 잠시 검색하면 알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님도 아시는 바와 같이 진리가 소음(騷音)이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숲에서 우는 새 울음소리, 개울물 흐르는 소리, 저 바다의 파도와 물빛 해조음 소리에 귀를 기울일지언정 옛 성현들의 말씀에 특히 종교인의 설교를 귀담아 듣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시끄럽다 이겁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새울음, 개울물 흐르는 소리, 파도소리 이 모든 소리가 진리의 원음이니까요. 내가 말을 안 하면 본전이라도 하지만 입을 열면 손해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중국의 어떤 고서에 말을 안 하기가 제일 어렵다 했습니다. 요즘 나는 그 말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권:수년 전에 큰스님께서는 절간에 부처 없다고 신도들 앞에서 법문(法問)을 하셨습니다. 그 법문이 크게 화제가 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절간에 부처가 없다면 큰스님께서 평생을 믿고 의지해 오신 절대존자인 부처님은 어디 계신가요?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조: 내가 절간에 부처 없다고 한 것은 한국 불교가 아직도 기복(祈福) 불교 중심이라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기복 불교를 버리자고 한 소립니다. 교수님은 지금 절대존자는 어디 계시느냐고 질문하셨는데, 인류에는 절대존자가 없습니다. 소위 부처님이라는 이름의 석가모니도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한 인간으로 팔십년 살다가 한 인간으로 죽었습니다. 그를 받드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의 가르침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의 가르침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등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대존자는 아닙니다. 교수님의 절대존자는 권영민 교수님 자신이고 맥켄 교수님의 절대존자는 맥켄 교수님 자기 자신입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절대존자임을 모르고 있는 데 있습니다. 하루속히 자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다 내가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절대존자임을 자각하면 모든 사람들 한 분 한 분이 다 절대존자임을 알고 받들게 됩니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입니다. 그는 이 깨달음을 49년간 설명하고 갔습니다. 이 깨달음이 그의 가르침 중에 “핵심”입니다.
권: 큰스님의 말씀을 모두가 귀담아 듣고 감명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서울 갔을 때 여론 조사한 것을 어느 신문에서 보았는데 한국민의 70%가 미국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미국에 대한 인상은 어떠신지요?조:미국에 대한 인상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나는 내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우방국으로 한국을 도와 한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선교사를 통해 먹을 것을 주고 경제개발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항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그 지긋지긋한 빈곤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무역국이 된 것은 미국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도 깊이 고민해 볼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좀 냉정하게 비판하면,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서는 다 마찬가지입니다마는 미국은 미국중심주의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핵과 같은 살상무기를 제일 많이 생산하는 국가라 합니다. 총기사고가 자주 일어나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나는 살상무기를 만드는 그 막대한 돈으로 기독교의 복음사업에 사용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 봅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1231년 몽골족이 한국의 옛 이름인 고려에 쳐들어와 양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는 전쟁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그때 고려는 적을 막을 총칼 등 무기를 만들지 않고 불경을 경판에 새겼습니다. 부처님의 생명존중사상으로 전쟁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경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팔만대장경”입니다. 미국은 기독교의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이니까 기독교의 정신을 생활화한다면 살상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미국이 인류평화와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핵을 폐기처분한다면 한반도를 위협하는 북한도 핵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핵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사실상 핵은 인류의 재앙의 근원입니다. 지금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백 년 못 가서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핵 폐기야 말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며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대역사라 할 것입니다. 미국은 그런 능력도 있고 그럴 수 있는 정신적 기반도 갖추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핵을 폐기하면 영원한 진리의 몸을 얻을 것입니다. 인류를 구한 구세주가 될 것입니다. 크게 버리면 크게 얻습니다. 미국이 세계 제일 강국답게 크게 한 번 버리기를 기대합니다.
권: 큰스님께서 아마 이 자리를 설악산 선방(禪房)으로 아시고 허공이 찢어지는 죽비(竹篦)를 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학생들과 교민들에게는 죽비 대신 마지막으로 축원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 알겠습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미국에 와서 자기네 전통시가인 ‘하이쿠’라는 것을 널리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의 교과서에도 하이쿠가 수록되어 있다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민들은 시조를 흘러간 유행가로 사대부의 음풍영월로 생각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하버드대학 맥켄 교수가 안타깝게 생각하고 영어시조운동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시조는 흘러간 유행가가 아닙니다. 한국인의 영혼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조상 대대로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이 소리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이 소리가 있는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시조는 한국인의 맥박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순신 장군도 시조 한 수로 나라를 구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김대중 대통령도 시조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제가 이곳 여행을 결정하면서 한국에서 시조를 잘 짓는 홍성란 시인과 박영희•강병천 두 분 시인을 말동무 삼아 모시고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주 부르는 이은상의 「가고파」 「성불사의 밤」와 같은 가곡은 모두 시조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동안은 바쁜 삶에 여유가 없어서였다고 하겠지만, 저는 이제부터 우리 시조를 사랑하고 노래하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권 :이제 말씀을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들려주시지요. 조: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걸어 다니는 허깨비라 했다 합니다. 나도 허깨비가 되고 싶었으나 허깨비는 못되고 제자리걸음만 걷는 허수아비입니다. 감사합니다.
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신 무산 조오현 큰스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끝>
<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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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대학에서 지난 3월 20일 ‘세계무대위의 한국문학’행사가 끝난후 대담을 한 권영민 교수(왼쪽에서 네번째)와 무산 조오현 스님(5번째)이 버클리문학회와 시조마당회원들과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