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인도적 행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 유엔 고문방지특별보고관 보고서 공식문건 회람
북한은 2013년 12월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이를 바로 집행했다.<사진=연합뉴스>
<유엔본부=신용일 기자> 유엔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건’을 국제사회 규정을 위반한 반인도적 행위로 결론짓고 지속되고 있는 북한 체제의 인권범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유엔 총회는 지난 1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후안 멘데스 유엔 고문방지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공식문건(A/HRC/28/68/Add.1)으로 회람했다.
보고서는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것으로 멘데스 특별보고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장성택, 장-이용하, 장수길의 처형을 저지하는 조치들을 취하지 않음으로서 국제고문방지협약 제1조와 제16조가 그들에게 고문과 그 이외의 혹독함, 비인간적 또는 비열한 대우 또는 처벌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한 권리를 침해했다”고 내린 최종결론을 담고 있다.
멘데스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2013년 12월17일 자신과 마루즈키 다루스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크리스토프 헤인스 유엔 약식처형방지 특별보고관이 공동명의로 북한 당국에 편지를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첨부된 편지는 이들 3명 유엔 특별보고관을 각각 임명한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들을 상기시키고 “2013년 12월12일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과 장-이용하, 장수길의 처형 소식”에 대한 북한 당국의 해명을 요구한 내용이다.
편지는 또 북한이 1981년 9월14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가맹국이 된 사실을 지적하고 북한 당국의 장씨와 측근들에 대한 처형이 위반한 조항들을 조목조목 설명한 뒤 반응을 물었다.
편지는 구체적으로 북한 당국에 ▲편지에 기술된 사건 요약이 정확한지? ▲장씨와 측근들에 대한 처벌 절차가 국제규약이 규정한 공정한 재판 및 법률절차를 준수했는지? ▲그들의 처형이 어떻게 국제 인권법에 저촉되지 않는지?에 대한 공식 입장을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60일 이내에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멘데스 특별보고관은 그러나 보고서가 지난 5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될 때까지 북한 당국이 “답신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이는 유엔 회원국들이 특별보고관의 조사에 협력해야 한다는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와 모든 고문과 그 이외의 혹독함, 비인간적, 또는 비열한 대우 또는 처벌 행위를 조사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멘데스 특별보고관의 이번 보고서는 유엔이 지난 해 12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체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시켜야 한다”고 권고한 결의를 뒷밭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를 확보, 기록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비리 등 반당 혐의가 씌워져 즉결 처형됐으며 장씨의 측근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 역시 유사한 혐의로 공개처형 됐다고 파악한 바 있다. yishin@koreatimes.com
■기자의 눈/ 존재의 이유
조선 해방 직후 소련군정 아래 한반도 북부에 자리 잡은 북한 공산당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체제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북한이 한반도 남부를 상대로 한 ‘대남 선전·선동’에서 전격 승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돌연 남진했다. 세계 역사학자들이 찾아내 공개한 전 공산국가들의 비밀문서들에 따르면 북한의 6.25 군사 행동은 중국과 소련의 사전 승인을 얻어 감행한 계획적 전쟁이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 더 나가서 왜곡했다.
북한의 거짓은 1950년 7월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람된 공식문건 S/1554호에서 명백히 드러난다.북한 외무상은 정부성명이라며 안보리 회람을 위해 유엔에 보낸 전보에서 “미국의 꼭두각시인 남한 당국이 먼저 우리를 공격해와 대응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 독립과 통일을 염원해 봉기한 남한 인민들을 도와 해방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엔은 앞서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선언하고 한반도 전체의 완전독립을 지원하는 ‘유엔한국위원회’를 현지에 파견해 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6.25가 발생하자 유엔은 이 위원회로부터 거의 실시간 상세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보고들은 북한의 갑작스런 대남 진격과 북측 라디오 방송이 쏘아대는 선전·선동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유엔한국위원회’ 실무전담반이 1950년 6월9일부터 24일까지 38선 지역을 직접 방문해 둘러본 결과를 정리한 현장보고서가 주목된다.
북한의 남침 하루 전에 작성됐으나 전쟁발발 4일후인 1950년 6월29일 안보리 공식문건 S/1518호로 유엔에 회람된 이 보고서는 “(한국) 국군은 북진할 만한 군사적 능력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을 뿐더러 자신들의 책임 관리 구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북한군들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며 “만일 북한이 무력으로 공격할 경우 남한은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당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최근 주유엔 북한대표부가 국방위원회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이라며 유엔 출입기자단에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며칠 뒤 이들 문서는 자성남 주유엔 북한대표부 대사의 요청에 따라 유엔에서 안보리 공식문건으로 회람됐다.내용은 날짜만 바꾸면 65년 전 “정부성명”이라며 북한이 유엔에 보내와 안보리가 회람한 전보와 착각 할 정도로 유사하다. 물론 당시와 마찬가지로 유엔에서 북한의 억지를 귀담아 듣는 회원국은 10손가락 안에 든다.
하지만 이처럼 꾸준하고 일괄된 선전·선동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이달 초 한국에서 발생한 주한미국 대사 살인미수 사건이 입증한다. 사건은 그동안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이 남한의 사회와 국회, 그리고 법원과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가를 현실로 확인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 주 한국에서 자칭 ‘평화사설단’이라는 청년들이 뉴욕에 도착했다.그들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풍선을 띄워 북한에 보내고 있는 대북전단이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겠다며 유엔 본부 출입을 시도했다가 유엔 경찰에 의해 현장 체포 경고를 받고 저지당했다.
당시 반 총장은 유엔 본부에 없었을 뿐더러 유엔은 세계 각국 대표들이 모여 있는 본부 내에서 그 어떠한 내용의 시위도 불허한다는 기본 상식조차 무시한 억지였다.
그리고서는 한국에는 “미국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구요? 자유는 깨뿔!”이라며 마치 무슨 “평화운동”을 하는 도중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듯 현장 사태를 보고했다.
그들이 국제사회가 유엔 총회와 안보리 결의들을 통해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는 북한 체제를 “평화”를 내세워 두둔하며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막겠다고 멀리 미국까지 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유엔에서 무시되고 있는 북한의 선전·선동이 한국에서는 왜 성공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편에 불과하다. yishin@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