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멜팅팟의 도시이며 재즈의 고향
2005년 훑고 지나간 태풍 카트리나 흔적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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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버스턴의 바닷가 21살 촉촉한 눈망울의 소녀를 남기고 돌아섬에도 그다지 큰 미련이 남지 않음은 뉴 올린스(New Orleans)를 향하는 부푼 기대감 때문이리라. 첫 사랑 여인을 노년이 되어 만나러 가는 두려움 섞인 설레임이라고 할까? 뉴 올린스는 내가 40대 혼돈(?)의 시절, 재즈를 접하고 나서 그 매력에 푹 빠져 언젠가는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다.
갤버스턴을 뒤로하고 뉴 올린스를 향해 87번 국도에 접어들었다. 지도를 보니 뉴 올린스에 가려면 87번을 타고 볼리바르(Bolivar) 반도를 거쳐야만 되어있다. 갤버스턴과 볼리바르 사이 바닷가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지하 터널로 연결된 줄 알고 달려갔더니 막다른 페리(Ferry) 선착장이 나온다. 아차 싶어 차를 돌리려 해도 뒷 차들 때문에 이미 늦어버려 하는 수 없이 안내원에게 얼마냐 물었더니 무료란다. 주민들 편의를 위해 연중 무휴, 무료….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차에서 내려 갑판에서 들이쉬는 시원한 바다 바람은 가슴에 남아있는 응어리까지 씻어 내린다. 때마침 돌고래 떼가 춤을 추며 우리를 쫓아오는 것을 보자 가뜩이나 무료란 말에 잔뜩 고무된 조수 왈, 낙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 낙원이 아니겠는가 라며 입이 귀에 걸린다 .
뉴 올린스는 루이지애나(Loisiana) 주의 남동부 끝에 위치한 도시이다. 루이지애나의 가장 큰 지형적 특징이 늪이 많아 대부분의 Freeway가 늪지대위에 깔려져 있어 운전을 하며 주변을 보면 금방이라도 악어가 나타날 것 같은 크고 작은 늪의 연속, 약 2시간 가까이 늪 위에 놓인 다리를 달려가며 이 다리가 이미 80년 전에 놓여졌다 하니, 미국인들의 힘에 탄복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운타운을 향해 가는 동안 아직도 2005년도에 훑고 지나간 태풍 카트리나(Katrina)의 피해 흔적을 도심 여기저기서 볼수 있었다. 그 당시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도심 학교가 있는 길에 들어서니 벽은 온통 흑인들 특유의 벽화(?)로 빈틈을 찾기 어렵고 조그마한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청소년들의 열기가 더해져 가뜩이나 뜨거운 뉴 올린스 더위를 한껏 느낀다.
흔히 미국을 멜팅 팟(Melting Pot)이라 말하곤 하는데 뉴 올린스가 그 대표적인 도시란 생각이 든다. 흑인들이 전체 인구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고 백인, 히스패닉계 등등이 어울려 첫 인상부터 멜팅 팟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얼마 전 나는 후배의 초대로 서울 강남에서 꽤 알려진 재즈 바(Jazz Bar)에 들린 적이 있다.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 장식과 멋쟁이 젊은이들, 그리고 잘 차려진 음식과 고급 양주에 음악은 분명 재즈가 흐르고 있었지마는 재즈 바라고 하기엔 뭔지 어색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재즈란 본래 이런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데…… 재즈(Jazz)란 단어는 본래 미국 남부 흑인들이 섹스, 여성의 성기 등을 의미할 때 쓰는 비속어였다. 그들의 음악을 이런 비속어로 표현할 만큼 과거의 재즈는 최하층 남부 흑인 음악이었다. 굳이 이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당시의 재즈 분위기는 결코 고품격도, 그다지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재즈는 소외 받은 흑인들의 애환이 만들어낸 음악이었고 삶의 표현이었기에 다른 화려한 요소들에 의해 그 본질이 변해서는 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호주, 일본 등에서도 인기가 높은 재즈 문화가 진품답게 느껴지지 않는 건 분위기 자체가 영 다르기 때문일 게다.
결국 진정한 재즈를 찾아가는 여행은 흑인들 삶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좁은 골목 안의 허름한 선술집으로 그 종착지를 두게 된다. 그 옛날 술 취한 해군들과 그들을 유혹하던 창녀들, 그리고 가난한 뮤지션들이 살던 뉴 올린스의 좁은 골목길로 향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창고 목조집의 삐걱거리는 마루에서 흑인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끈끈한 섹소폰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진짜 재즈를 들어봤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바로 뉴 올린스가 재즈의 고향이다. 재즈가 그 형태를 이루기 까지는 남부 흑인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음악의 역사가 있었다. 17세기 말에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과 그 자손들은 아프리카 민속 음악의 감각을 노래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말 노예 해방으로 흑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음악은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남부 흑인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래그 타임(Rag Time)이라는 경쾌한 스타일의 피아노 음악이 생겨 유행했는데 이것이 재즈의 모체가 되었다. 뉴 올린스의 초기 재즈맨들은 주로 술집이 밀집한 홍등가에서 연주했는데 1917년 홍등가가 폐쇄되면서 많은 재즈맨들이 시카고와 뉴욕 등지로 옮겨갔고 뉴 올린스 재즈는 시카고와 뉴욕에서 세련미를 더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그리고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 등은 이 시기의 재즈를 이끈 불세출의 거장들이었다.
뉴 올린스 재즈 연주의 특징은 소규모의 브라스 밴드라고 할 수 있고 트럼펫, 트롬본, 클라리넷, 드럼 등이 기본 악기로 쓰이는데 밴드보다는 솔로 연주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 중에는 악보의 독보력도 없이 타고난 음의 전개력으로 즉흥 연주를 하는 재즈맨들이 있었는데 트럼펫 주자 버디 볼든(Buddy Bolden)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즉흥 연주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남아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 바로 뉴 올린스, 골목에는 지금도 밤이 되면 여전히 검은 피부의 달인들이 모여 옛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나도 그 일원이 되어 싫증이 날 때까지 며칠이고 이들과 같이 하련다.
<글∙사진 성기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