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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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눈감기 힘들었을 그 아이의 엄마

2015-03-02 (월) 김진환 / 상속·노인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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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허겁지겁 한 여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갑작스런 ‘여동생’의 교통사고,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둔 자폐아들 때문에 진퇴양난에 놓였다고 했다. 고인은 자폐아의 엄마로, 부모형제 하나 없는 같이 의지하며 친자매처럼 지내던 ‘언니’가 전부였었다.

일을 두세 군데나 뛰면서 얼마 전 콘도를 마련해 19세된 자폐아들과 열심히 살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너무 자신을 혹사했었나. 그렇게 잠이 고팠었나. 고인의 ‘언니’는 친자매도 아니면서 어느 친자매보다도 정이 흥건히 묻어나는 말투로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들을 말로 뱉어냈다. 새벽예배 가던 길에 가로등을 받고 숨지면서 남겨진 아들 때문에 눈을 못 감았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 자폐아 이군을 본인의 집으로 데려와 돌보려고 했는데 소셜서비스 당국은 본인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그룹 홈으로 보냈단다.

갑자기 엄마를 잃은 이군은 늘 왕래하며 들여다보던 본인도 없는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 급작스럽게 바뀐 환경을 이해를 못할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온 세상이 무너진 모습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군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며 겨우 겨우 이어가던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에게는 법적으로 필수적인 콘서베터십이란 법원 절차가 있는데 고인은 몰랐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18세가 되면서 콘서베터십이 설정되었다면, 발달장애인의 장애상태에 따라 법원은 성인이 된 아들의 권리를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을 엄마와 ‘이모’에게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군의 엄마가 사망한 후에도 ‘이모’는 이군의 거주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계약서 등을 대신 서명할 수 있고, 이군에 관한 모든 기록을 떼어볼 수도 있고, 교육에 관한 결정을 한다든지, 병원 의사와 치료에 관한 상담 및 결정권을 갖고 이군을 돌보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모’가 이군을 돌보기 위해서는 모든 정황을 보았을 때, 이군의 신상에 관한 콘서베터십으로는 역부족이고, 법원이 요구하는 보석금을 내고 재정관리 콘서베터십도 함께 신청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얼마 전에 구입한, 현재 텅 빈 집이 되어 있는 30만달러 상당의 콘도가 또 하나의 문제였다. 급매를 하려했으나 매매할 수 있는 권한이 본인에게 없는 관계로 부동산에 내놓지도 못했다고 했다.

고인이 생전에 리빙 트러스트를 설정해 본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콘도를 트러스티로 소유하고 유사 때 ‘언니’가 관리할 수 있도록 ‘언니’를 후임자로 지명해 놓았더라면 매매나 렌트로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 조치가 없었던 상황에서, 고인의 소유로 돼 있는 콘도는 상속법원 검증을 거치지 않고는 처리를 못하게 되어버렸다.

현재 상황에서 이군은 스스로 상속법원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상태가 못 되고, 친지가 알려지지도 않은 상태며, 누군가가 나서서 수속을 밟는다고 해도, 법원 신청서, 신문에 보도하는데 드는 비용, 콘도 감정가격 수수료 등 당장 마련해야 하는 법원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고인은 콘도 이외의 자산으로 15만달러짜리 생명보험을 이군을 수혜자로 들어 놓은 것이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였다.

고인은 이군이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SSI 보조 액수로는 빈민생활 수준을 면키 힘들다는 생각에 생명보험을 들어서 이군이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배려한 듯 했다. 그러나 이군이 생명보험금 15만달러를 수혜 받는 즉시 모든 정부 혜택이 끊기게 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유인 즉, SSI나 메디칼 등 정부혜택을 받는 장애인이나 노인은 2,000달러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군이 보험금을 개인 이름으로 받는다면 15만달러를 다 쓰고, 잔여금이 2,000달러 이하가 되면 비로소 SSI나 메디칼을 다시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고인이 이군을 위한 특수 트러스트를 살아생전에 설정해 두었다면 이군은 정부 혜택은 혜택대로 계속 받으면서 고인이 원하던 대로 생명보험이나 콘도를 팔아 남은 돈은 특수 트러스트를 통해 모자라는 생활비를 조달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많은 시간과 경비를 소모하는 복잡한 법원절차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리 각자 놓인 상황에 따라 그 정황에 맞는 면밀한 서류를 정확히 작성해 둘 것을 권한다.

(714)739-8828

<김진환 / 상속·노인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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