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실(연합감리교회 뉴욕연회 여선교회장)
지난달에 기고한 ‘아기 이불 뜨기 선교’에 관한 글을 읽고 연락해 준 분이 있어 감사하고 놀라 왔다. 칼럼을 통한 나눔이었다.
나의 마음이 전해 진 것이 감사했고, 감동받은 마음을 지체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감사했다. 또한 ‘웨체스터 판’이라 하여 내가 거주하는 지역 한인들만 구독하려니 했었는데 놀랍게도 타주에 거주하는 지인들도 읽고 연락을 주어 동포 사회에서의 한국일보의 힘도 알게 되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뜨개질 선교는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모임에서든지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동하는 이들이 함께 배우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친교의 방법이기도 하다.
연령층이 비슷하면 함께 뜨개질을 하는 동안 공유하는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숙한 교제의 시간이 되며, 연령층이 다양하면 어른들은 뜨개질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젊은 세대는 핸드폰이나 컴퓨터 사용법을 어른들에게 가르쳐 드리면서 서로에게 다양한 배움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기이불 뿐만 아니라 양로원 노인들을 위하여 작은 무릎덮개 이불이나 어깨에 두를 수 있는 숄도 ‘받아서 감사하고 주어서 기쁜’ 귀한 사랑의 선물이 된다.
미국에 살면서 쉽게 배우고 실천하게 되는 좋은 생활 습관 중의 하나가 종교에 관계없이, 물질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수시로 이웃과 나누는 자선(charity)문화이다.
그런데 “선교(mission)”라는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자선에 대한 반응은,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자신들의 겪은 경험에 따라 무척 호의적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 섬긴다는 것, 도와준다는 환대 (hospitality)의 의미를 가진 “선교”는 내가 주고 싶은 것, 혹은 내가 쓰다 남은 물질들, 또는 내가 갖은 재주를 나 보다 어렵고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선교를 하려면 먼저 도움이 필요한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내가 나누어줄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일방적으로 주려고만 하는 태도는 받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모욕감마저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나의 물질과 재능을 나눔으로써 그들이 나에게 돌려주는 최고의 선물인 축복을 받으며 서로가 같은 위치에 서서 함께 주고받는 상호적인 행위가 선교인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행동이 스스로 자처한 책임과 압박감으로 도리어 마음을 상하게 하며 그 결과로 주변사람의 마음까지도 거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비록 기독교인들이 하는 선교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어느 단체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이 필요한 것 보다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고집할 때에 좋은 의도로 시작한 봉사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형편일 때에 더욱 낮아지며,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알며, 나누어 줌으로서 섬김의 도리를 깨닫을 때에야 그것이 진정한 선교가 되고 자신에게는 축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