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제하 농촌의 성적 문란·지주의 부도덕 그려

2015-01-1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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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93> 김동인 ‘감자’

김동인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면 한국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때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김동인은 한국 단편소설의 원조로서 계몽주의 일색이었던 초창기 신문학 환경에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여 소설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배따라기’ ‘광염소나타’ ‘발까락이 닮았네’ ‘붉은산’ ‘신앙으로’ ‘감자’ ‘약한 자의 슬픔’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을 대장부로 묘사한 역사소설 ‘운현궁의 봄’을 남겼다. 이 가운데 ‘감자’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짜임새 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비교적 엄한 가문의 딸로 자라난 복녀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극도의 가난에 처하게 된 그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같은 동네에 사는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서 시집을 가게 된다.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더욱 가난하게 되어 거지소굴인 평양 칠성문 밖에 살면서 송충이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어느 날 복녀는 함께 송충이를 잡던 젊은 여인들이 놀면서도 자기보다 더 많은 삯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사정을 알고 보니 노동 감독과 은밀히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복녀도 그 특권 받는 대열에 끼면서 인생 도덕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그 후 복녀는 마치 잘 먹고 잘 사는 삶의 비결이라도 배운 듯이 터놓고 매음을 시작하게 되고 나중에는 중국인 왕서방과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그런데 왕서방이 어느 날 처녀 하나를 사서 장가를 들겠다고 하는 날 강한 질투심으로 그의 신방에 뛰어들어 낫을 휘두르다가 도리어 그 낫에 찔려 죽게 된다. 복녀의 시체를 두고 남편, 왕서방, 한의사 간에 뒷돈 거래가 이뤄져, 복녀는 낫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고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아무도 보는 이 없이 공동묘지로 실려 나간다.

소설 ‘감자’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1930년도 당시 농촌 지역의 성적 문란, 돈 좀 있는 중국인 지주의 부도덕적인 행실 등을 소재로 그려낸 사실주의 소설이다.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동반되는 행위이며 나름대로의 굳은 결의가 필요했다. 그 당시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감시와 검열을 거치느니 차라리 붓을 꺾고 땅 파는 일을 했던 것도 이같은 이유였다. 김동인은 생계도 건강도 팽개치고 끝까지 문학인으로 살다간 현대 문학의 선구자였지만 광복을 앞둔 시점에서 그가 행했던 친일행각은 병적이었다.

개인 삶의 행적으로 인해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 안에 내면화 되어 있는 논리, 식민지 시대 친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그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평가다. 식민지를 사는 지식인들에게는 권력자를 닮고자 하는 식민지인의 욕망과 타협이 어느 새 그들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하며 변절자라는 부끄러운 명함을 달게 된 많은 조선 작가들은 광복이 도래할 때까지 식민지 상태의 유지를 용인하고 정당화하면서 ‘대동아 공영’에 대한 환상을 민중들의 마음에 불어 넣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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