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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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내주는 계절

2014-12-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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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4세기 지중해 연안에 케일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 지방 교회 감독으로 니콜라스라는 사제가 살았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는 감옥에도 오래 갇혀 있었는데 병든 죄수들을 간호하는 등 사랑이 넘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성자로 불렀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성탄 때가 되면 그는 평소에 거두었던 식량이나 옷을 가난한 집의 문밖에 말없이 놓고 갔다.

니콜라스의 선행은 해마다 성탄 계절에 실시되었으며 산타 니콜라스란 발음이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따라서 산타클로스의 정신은 남몰래 도와주는 사랑이다. 그것이 곧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의 정신이기 때문에 성탄 절기인 연말은 주는 계절, 사랑을 실천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역대 뉴욕 시장 중 가장 훌륭한 시장으로 알려진 사람이 라과디아(Fiorello LaGuadia, 1934~45년 재임)이다. 그가 뉴욕의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었던 어느 12월 빵을 훔치다가 잡혀 온 노인이 있었다. 배고파서 훔친 것이었다.


라과디아 판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의 행위는 10달러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냈다. “벌금 10달러는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음식을 먹은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유명한 넓은 중절모자를 재판부 서기인 베일리프에게 내주며 말하였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너무 잘 먹은 데에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노인은 오히려 47달러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호흡하고 살려면 들이마시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뿜는 호흡도 있어야 한다. 벌기도 잘 해야 하지만 내주는 일에도 멋진 인간이 되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진짜 저축은 필요한 사람에게 내준 물질과 사랑이다.

뉴저지 패터슨에 리보라는 17세의 소년이 있다. 그는 손재주가 있어서 5년 전부터 자전거 수리를 시작하였다. 틈틈이 이웃을 다니며 안 쓰는 자전거를 기증 받는다. 그것들을 수리해서 크리스마스 때 가난한 아이나 복지시설에 선물하는 것이다. 연간 20대나 선물한다고 하니 정말 훌륭한 소년이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 악보는 연주되어야 음악이 되고 종은 울려야 종이 되는 것처럼 사랑도 내주어야 사랑이 된다. 12월은 놀고 마시고 먹는 달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달이다. 사랑이란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다. 나이가 찬다고 해서 자연히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깊은 애정에 둘러싸여 살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연습에 연습을 쌓은 결과로 남과 바른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사랑도 많은 실패와 훈련을 통과한 뒤에 나의 것이 된다. 청소년기의 첫 사랑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그의 명저 ‘사랑에 관하여’에서 성숙한 사랑과 미숙한 사랑을 구별하였다. 성숙한 사랑이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라는 고백이고, 미숙한 사랑이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고백이다. 필요를 동기로 한 사랑은 그 필요성이 약해질 때 함께 약해진다.

아기가 엄마에게 말을 배울 때 필요성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과 엄마를 향한 사랑의 거듭된 훈련과정에서 자연히 습득되는 것이 언어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랑이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는 구조이며, 미숙한 사랑이란 “사랑을 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구조이다. 필요나 조건을 동기로 한 사랑은 자기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무너지는 것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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