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김 숭목사 ㅣ 감사절과 성탄절 사이에

2014-12-0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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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이란 글자 그대로 정서적 차원의 문제이다. 감사의 정서가 내 맘에 충일할 때 난 만족감의 최고지점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감사 100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감사의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은혜’라는 조건이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거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은혜가 과연 제대로 이해가 될까 싶지만, 감사는 역사적으로 값없는 은혜를 받은 자들의 경험의 산물이다.

미국에 살며 좋은 게 하나 있다. 미국은 우리가 이 수식(數式)의 완성을 누릴 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비슷한 시기에 갖고 있는 나라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이 그것이다. 그 두 절기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무관하게 블랙 프라이 데이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하는 상술로 얼룩져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시기적 분위기는 ‘감사’와 ‘은혜’의 긴밀한 상관성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감사절은 내가 받은 은혜를 의식하는 날이며, 성탄절은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은혜가 공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조화를 가로막는 방해꾼들이 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의 충일한 감사에 흠집을 내는 방해꾼들 말이다. 나는 이 방해꾼들로 ‘3불(三不)’을 지목한다. 불안(不安), 불만(不滿), 그리고 불신(不信)이 그것이다.


첫째로, 불안은 우리의 감사의 빛을 어둡게 하는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다. 이 검은 그림자는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 가인의 삶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동생 아벨을 죽여 놓고도 도리어 뻔뻔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의 안전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의 안전을 보장하신다. 하지만 그 안전은 ‘평생의 불안’ 속에서 보장된 것이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불안의 그림자가 덮인 장수인생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은 누가 나를 덮치진 않을까, 내일은 누가 나를 가격하진 않을까 하며 평생 성(城)만 쌓다가 마친 인생, 바로 가인의 인생이었다. 이처럼 불안은 감사 제거의 주범 중 하나이다.

둘째로, 불만은 우리의 감사의 향기를 죽이는 독가스와 같다. 불만의 성경적 주인공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중간과정인 광야의 삶에서 그들은 극도의 불만을 표출했다. 이렇게 힘들게 하려고 이집트에서 우리를 빼냈단 말인가 하며 그들은 매일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 원망의 독가스가 얼마나 강했는지 삽시간에 이스라엘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이처럼 불만은 출애굽의 ‘돌아보는’ 감사를, 그리고 가나안의 ‘기대하는’ 감사를 우리 안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범이다.

셋째로, 불신은 우리의 감사의 축복을 저주로 만드는 부실공사 다리와도 같다. 흔히 기독교의 구원을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 짓는 ‘다리’로 묘사한다. 우리의 죄인 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기 힘든 깊은 협곡을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건너갈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의 다리로 우리는 하나님께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의 희생이라는 콘크리트 재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셔서다. 그런데 우리는 불신이라는 재료로 그 협곡에다 우리의 다리를 건설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다리는 부실공사 다리이다. 성수대교처럼 무너지는 다리이다. 이처럼 불신은 하나님이 놔 주신 ‘그리스도 다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제거해 버리는 마지막 주범이다.

감사절이 지나고 성탄절이 다가온다. 어쩔 땐 이 둘이 서로 뒤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혜의 성탄절이 먼저, 감사의 감사절이 그다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감사한지를 모른 채 지나쳐 버린 감사절을, 성탄절의 충만한 은혜로 다시 채우면 더할 수 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도, 감사 제거의 세 가지 주범에서 ‘불(不)’ 자를 다 빼도록 하라. 그렇게 할 때 진정한 평안(安)과 넘침(滿)과 신뢰(信)가 찾아올 것이다. 참 은혜를 통한 참 감사가 회복되는 연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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