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타민 대신 쥐약?

2014-11-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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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영 / 병원 수퍼바이저

아침식사를 한 후 비타민을 먹는다는 것이 그 옆의 수퍼 타이레놀 피엠을 먹었다. 찬장 안에 나란히 서 있기는 하되 병의 크기도 색깔도 전혀 다른 것을 뚜껑을 열고 두 알을 꺼내어 물을 따라 입에 넣을 때까지 내 분별 신경계통은 아직도 취침 중이었는지 목구멍에 넘기는 순간 잘못된 것을 알았다.

살이 찐다고 투덜대면서도 부족할지 모를 영양과 늙어가는 뼈를 염려하여 잊지 않고 비타민을 챙겨 먹겠다는 의지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유난히 약에 약한 편이라 감기에 걸려도 약보다는 레몬차를 마시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최선책이라 믿어 약을 피하는 터이다.

타이레놀 한 알만 먹어도 졸리고 맥이 빠져 빌빌거리는 데 건강한 몸에 피엠을 두 알씩이나 삼켜 버렸으니 비타민을 기다리던 내 몸속의 세포들은 무슨 운동을 시작할 것인가.


한심한 생각으로 맥이 빠져 부엌 의자에 앉아 방금 약을 꺼낸 찬장을 멀거니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양념통이나 유리잔 같이 본래 자리를 차지했던 터줏대감들이 슬금슬금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약들로 채워졌다.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약국을 차려도 한 구석은 차지할 양이다.

약병에 이 약을 먹고 운전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고 보니 차를 운전하고 나가는 것은 단념해야 한다. 그날 계획했던 일, 해야 할 일들을 느닷없디 접고 보니 소중한 하루를 허망하게 남에게 빼앗긴 듯 억울해진다.

그러나 화나는 일, 골치 아픈 일, 답답하고 복잡한 일은 될수록 덮어 버리고 생각지 말고 살자는 것이 내 생활방식인지라 딴 생각 말고 하루휴가를 받은 셈 치자고 마음먹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신문에서 한 농촌 청년이 농약을 사이다인줄 잘못 알고 마시고 죽은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쥐가 있어서 쥐약을 놓았다가 그걸 먹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 그 기사를 읽고 떠오른 생각은 농약이란 독한 것이어서 마시기 전에 그 냄새를 못 맡았을 리가 없는데 혹시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 아니었을까하는 의심이었다.

점점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나 자고 싶은 생각이 들어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비타민인 줄 잘못 알고 쥐약 먹고 죽은 여자’ 그런 기사가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리면 누가 애도를 해줄 것인가.

“쯧쯧 그런 정신 가지고 살면 뭘 해, 잘 죽었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그 사람이 그렇게 바보인줄 몰랐네 하고 혀를 찰 일이다.

슬슬 감겨오는 눈을 주체하지 못한 채 까짓 타이레놀 피엠 두 알 가지고 죽는 이상체질이 아님을 새삼 감사하며 공상의 날개를 접는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얻은 하루의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집안에서 가장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 잘 드는 구석자리에 편안히 눕는다.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하루의 휴가를 가져도 세상 돌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진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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