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몽환적인 장관
▶ 80마일 내 사람 없는 곳 혼자서 산행은 피해야... 모자·선크림·GPS 필수
■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할 비경
새벽 4시.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고원 사막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지난밤 미리 도착한 차량 서너 대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어제 늦은 오후, LA를 출발하여 쉬지 않고 달려 9시간 만에 도착했다. 장시간 운전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곳을 찾을 까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곤함도 잊은 채 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이곳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매혹적이며 신비한 기하학적 곡선이 살아 꿈틀대는 세계 10대“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할 비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문 사진가의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는 더 웨이브(The Wave)란 곳이다. PC 운영체제인 윈도 배경화면에 자주 등장해서 낯이 익은 이도 많겠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또 어떻게 가는지 아는 이는 매우 드물다. 더 웨이브는‘파도’란 뜻이기에 언 듯 바다를 떠올리게 되지만 해발 1600m,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와 유타주 경계의 고원 사막지대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정확히 파리아 캐년-버밀리온 클리프 자연보호구역 Paria Canyon-Vermilion Cliffs Wilderness 구역에 숨겨져 있는데 파리아 Paria는 고대 인디언 언어로 ‘진흙탕’이란 뜻을 지녔다. 남쪽으로 노스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이 북으로는 클린턴 대통령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그랜드 스테어케이스 에스칼란테 국정 기념물(Grand Staircase Escalante National Monument)이 동쪽으로는 수백미터 깊이의 콜로라도 강이 굽이치며 깎아 놓은 수직 절벽과 거대한 협곡이 버티고 있다.
더 웨이브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이곳은 아주 오래 전에 얕은 바다였다. 다른 색을 지닌 모래와 침전물이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독특한 형태로 퇴적되었다. 이후 지각이 솟아올라 육지가 되었고 풍화작용과 빗물의 침식이 거듭되었다. 특히 거센 바람과 함께 실려온 미세한 모래가 부딪히고 특정 지역에서 회오리가 일면서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푹 찍어낸 듯한 크고 작은 움푹 패인 침식지형이 탄생했다.
더 웨이브 부근은 지구상 살아 있는 지질학 표본이자 자연사 교과서로도 알려져 있다. 수천 겹의 붉은색 사암 지층은 발로 밟거나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부서지며 부근에는 주라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공룡 발자국, 동물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지역은 정부기관(BLM·Bureau of Land Management)의 출입 인원 제한 및 보호를 받고 있다.
반경 80마일 이내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로 이곳을 방문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 폭우가 기습적으로 내리는 여름~가을철의 몬순시즌에는 산행이 시작되는 주차장까지의 왕복 17마일 비포장도로가 진창길로 변해버려 차량 이동이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기관 측은 4륜구동 차량을 추천하지만 비 소식만 없다면 세단으로도 갈 수 있다.
웨이브까지 왕복 6마일 트레일은 이정표도 없이 사무실에서 나눠준 지도와 지형만 보고 찾아가야 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 가파른 사암 절벽을 기어올라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조심할 점은 한여름 온도가 110도를 넘나들며 복사열까지 더해져 탈수, 과로로 이어져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는 미국의 위험한 트레일 가운데 한곳이다.
BLM 측은 충분한 식수(1인당 1갤런을 권장한다)를 챙겨갈 것과 무더운 여름철(6~9월) 산행은 가급적 피하라고 권장하며 만약 여름철 산행을 계획한다면 최대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일찍 돌아오는 것도 추천하고 있다.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1~4시는 걷지 않는 것이 좋다. 초행이라면 가급적 길눈이 밝고 산행 경험이 많은 이와 함께 가는 것이 좋고 절대 혼자서 산행하는 일은 피해야겠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초행에 비슷비슷한 자연 풍경 때문에 길을 잃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튼튼한 신발 착용은 필수며 모자와 선크림, GPS 또는 GPS 앱이 깔린 스마트폰과 응급 처지 키트, 야간산행을 대비한 비상등을 꼭 챙겨가자.
산행이 시작되는 와이어 패스 (Wirepass)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벅스킨 걸치(Buckskin Gulch)의 지류이기도 한 코요테 와시(Coyote Wash)마른 개울을 따라 0.6마일(약 1km)을 걷는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웨이브 트레일(Wave Trail)을 가리키는 유일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부터는 멀리서 쉽게 보이는 형광색 입산 허가증을 배낭에 매달아야 한다는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다. 입산 허가증 없이 출입하다 발각될 경우 평생 허가증 응모, 웨이브 입산 자체가 금지되며 수백달러의 범칙금을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절대 허가증 없이 입산하지 않도록 하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이때부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길이 펼쳐지며 0.6마일(1km)를 더 걸어 들어가면 40도 경사의 가파른 사암지대가 나온다. 이때부터 부서지기 쉬운 사암 지대를 걸어야 하는데 BLM 센터에서 나눠준 등고선이 표기된 지도와 사진 속 지형을 보고 웨이브까지 이정표나 팻말 없이 찾아가야 한다.
마지막 구간인 0.5마일 길이의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오르면 꿈에 그리던 더 웨이브에 도착하게 된다. 한 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사암이 만든 그늘에서 미리 챙겨온 간식과 물을 마시면서 숨을 고르자. 이제 “죽기 전에 꼭 방문해야 할 비경” 웨이브의 풍광을 카메라와 캠코더 속에 마음 가는대로 담는 시간만 남았다. 빛의 각도에 따라 빛의 광량이 시시각각 변화함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일출 및 일몰시간대는 부드러운 기하학적 곡선과 움푹 패인 침식지형이 만들어 내는 공간감이 더해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일몰시간대 사진촬영 때 성능 좋은 GPS와 랜턴, 머리에 착용하는 헤드라이트 등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고원 사막지역의 야간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가벼운 점퍼나 재킷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게 필수다. 돌아가는 길에 막다른 절벽과 마주쳤다면 무리하게 내려가려 하지 말고 조금 우회하더라도 완만한 경사면을 찾아 안전하게 하산해야겠다.
[여행수첩]
입산 허가증은 어떻게 구할까?
부서지기 쉬운 탓에 출입 인원은 하루 2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4개월 전 인터넷 사이트(www.blm.gov/az/st/en/arolrsmain/paria/coyote_buttes.html)를 통해(인터넷 응모비 7달러, 참가비 1인당 5달러) 예약이 가능하며 매달 1일, 하루 10명분의 출입 허가증 발표와 함께 당첨 유무를 결재과정에서 미리 등록한 이메일로 알려준다.
유타주 케납(Kanab)의 BLM 센터에서는 매일 오전 9시, 다음날 입장 허가증 10명분을 추첨을 통하여 선정한다.
더 웨이브는 코요테 뷰트 노스(Coyote Buttes North)구역에 속해 있으므로 사우스(South)로 신청하지 않도록 한다. 신청서 작성 때 응모는 1인당 1장으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끔 2장에 같은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정행위가 공원 직원에 발각되면 행여 당첨되더라도 허가증은 무효가 되고 강제 퇴장 당하므로 규정을 꼭 준수하자.
▲ 케납 BLM 방문자 센터
주소: 745 E. Highway 89 Kanab, UT 84741
전화: 435-644-1300/1301
시간: 오전 8시~오후 4시30분
웹사이트: www.blm.gov
▲ 가는 길
로스앤젤레스→라스베가스→I-15→세인트 조지 St. George→UT9→UT59/AR389→AR89A→ AR89→House Rock Valley Rd→남쪽 8.5마일(비포장)→와이어패스(Wirepass)주차장
<정철 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