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처지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세상살이에는 여러 형태의 갖은 고난과 고초가 동반된다.
남이 보기엔 사소한 것 같더라도 자신이 겪는 고초가 언제나 이 세상 어느 누가 겪는 것보다 더 큰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자신에게 닥친 고초가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 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주렁주렁 딸린 어린 자식들과 자신을 청상과부로 만들어 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간 지아비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엉킨 애처로움, 그로 인해 아마도 숨이 콱콱 막히며 세상이 온통 깜깜해지는 것 같은 경우에 처한 여인들.
수학여행 갔다가 사회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졸지에 생수장된 자식을 둔 부모들, 멀쩡하던 자식이 타인의 과오로 난 교통사고 척추골절로 인한 전신마비 불구의 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사형 아닌 사형선고를 받은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들,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도 그래도 함께 부대끼며 살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저세상 사람(심장질환으로 사후사망진단이 되었지만)이 된 후 잠시나마 남편 돌연사 원인의 혐의를 받던 아내도 있다.
또 암으로 남편을, 끔찍한 사고로 자식을 연거푸 잃은 여인, 힘들게 홀로 키워 장성하여 이제 막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부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난폭 운전자의 보행도로 침범으로 해변가 수많은 모래알 중의 하나의 확률로 그 많은 사람들 중 유일한 희생자가 된 단하나 밖에 없던 자식을 둔 엄마의 딱한 사연도 들었다.
발랄하기 그지없던 자식이 정신질환으로 폐인이 돼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경우도 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상하기도 두려운 엄청난 큰 시련들을 겪고 있을 가정들, 특히 여인네들을 생각한다면, 내가 아니 우리가 겪는 고통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고달픈 인생살이에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너무 힘들고 큰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들은, 왜 내게 이런 일이? 하느님 계신 거 맞아? 망연자실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는 말한다. 건강하고 병약한 게 무슨 큰 차이가 있으며, 부의 과소가 무슨 문제이며, 행,불행 속 이 순간 겪는 고초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미지의 움직이는 우주원리에 비춰볼 때 미미한 존재인 우리 인간들이 매일 매일 생활 속에서 겪는 일들, 특히 시련들은 그 아무리 혹독한 것 같더라도 한편 생각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니 무슨 일에 너무 희로애락(喜怒哀樂) 할 필요가 없다. 종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그 개념을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성인들과 우리네 일반인들과 과연 큰 차이가 있을까? 있다면 엄청나게 크겠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다만 성인들은 우리네들이 생각하면서도 실천 못하는 것들을 기꺼이 기쁘게 실천하신 분들일 뿐이다.
왜 일반인들은 하지 않은 일들을 하신 분들일까. 부처와 중생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한 순간 마음의 돌이킴에 있는가 아닌가로 구별 지어진다고 불가(佛家)에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절대자의 존재유무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의지하려는 현명함, 깨달음이 있어야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 진 자들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