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70. 50. 40. 30. 20년

2014-07-1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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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장난기가 솟는다. “23분에 일어나다니 30분 정각이 더 좋아” 그래서 시계바늘을 곁눈질하며 자리에 도로 눕는다. “51분에 외출하다니... 1시 정각에 출발하자.” 이런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생활의 패턴이 되어 버렸으며, 이에 꼭꼭 묶이면서 한편 이를 즐긴다. 결국은 무엇이든지 불투명하거나 엉거주춤한 상태가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 일이 확실하게 풀리는가.

하여튼 이런 생활습관은 “어떤 문제를 일생동안 연구하여도 완전하게 풀 수 없으니 꼭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라”는 선친의 가르침과 함께 필자의 직장생활의 기본이 되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그 결과는 70.50.40.30.20이라는 숫자를 얻었다. 첫 번째 70은 1944년에 시작한 교직 햇수이다. 일제 강점기의 교직생활 1년을 빼더라도 내년이면 70년이다. 이는 유학 중의 교생실습도 계속된 교직생활로 간주한다.


다음의 50은 유학기간을 빼고 1964년 뉴욕에 정착한 지 50년이 된다. 뉴욕에 살게 된 이유는 항상 내게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교육실험 장소로 적당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서 시작한 뉴욕한국학교는 벌써 40을 넘어 2년째를 맞이한다.

어떤 모임이나 규모가 클수록 힘이 세다. 회원이 많을수록 생각이 풍부하고 실천력이 강하다. 한국문화교육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한 지도 30을 몇 해 넘겨서, 그 NAKS는 미국 전역의 강력한 교육단체가 되었다.

나머지 20은 이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까지의 햇수이다. 독자에게는 어떤 느낌을 전했는지 모르지만, 본인은 자신의 정신 단련을 위한 기회로 알았다. 거기에 보태서 생각하며 글 쓰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뜻있는 숫자의 행렬을 보면서 감사할 뿐이다.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적인 생활을 70년이나 계속하였으니, 심신이 피곤하겠다는 주위 친구들의 위로를 받는다. 도리어 학교와 관련 있는 일들을 계속하였기 때문에 건강이 유지되었고, 소박한 생활을 계속하였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몸과 마음을 어린 학생들의 맑은 눈이 깨끗하고 순수하게 지켜준다고 느끼게 하며 그들은 선의의 감독자인 것이다.
‘오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손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볼 수 있고, 도울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성과를 계속 지켜볼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필자에게 50년대 말의 미국생활은 놀라움의 계속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6.25동란 직후의 한국생활과는 천양지차였다. 한국 어린이들을 이 넓고 자유스러운 천지에 풀어놓아 실컷 뛰어놀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의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나?

‘오래 산다’의 참뜻은 세상의 온갖 것이 변하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역사를 이어가는 힘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로운 생각과 생활의 변화이다. 변화는 영원한 것이다. 큰 흐름의 변화에 놀라 옆으로 살짝 비켜서기도 하고, 큰 흐름에 용감하게 올라타기도 하면서 우리는 역사의 물줄기를 즐긴다. 혹시 이러한 변화를 피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자신을 껍질 속에 가두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인다.
어떤 일의 결과보다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교육이다. 오래 산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였는가를 지켜보게 된다.

외지에서 한국문화교육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한 반세기의 세월이 주는 결과는 흡족하다. 따라서 70.50.40.30.20은 필자 자신의 목표를 향한 일련의 이정표로서 뜻 깊은 숫자가 된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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