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농촌 머슴 CEO

2014-05-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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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봉 수필가

“농촌머슴 조카입니다. 오시면 찰보리 밥에 산채나물 푸짐하게 넣고 맵고 달콤한 임실고추장 듬뿍 얹어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하십시다. 마이산에 올라 새벽달도 보고..”

처조카 정기씨가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한국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로 전갈을 준 것이다. 그는 은퇴 후, 전북 진안 임실에서 근 7년째 마을 간사로 있다. 그가 만든 농촌 웹을 여니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환히 웃고 섰다. 이순(耳順) 나이에도 건장하고 꿈꾸는 농부의 모습이 멋있다.

조카는 나와 동갑내기다. 그런데 20대 결혼 초부터 나만 보면 항상 웃는 낯에 이모부라고 정겹게 대해주던 예절바른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가 미국오던 해, 아모레로 유명한 T화학에 입사했는데 근 30년 후 상무로 퇴직하기까지 회사의 큰 기둥으로 일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그는 젊은 나이에 회사의 중추 웰빙 사업인 설록차 사업본부장으로 발탁되었다. 농사에는 전혀 문외한이던 그가 그후 전남의 강진과 해남, 제주의 서귀포, 남제주군에 100만 평이 넘는 녹차밭을 조성, 한국의 대표적 기업농을 세우고, 전통차문화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30년 직장생활 동안 휴가 한번 못가고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물러난 후 오래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최고경영자 승진을 앞두고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발휘하겠다는 열정에 불탔었는데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충격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신문에 난 ‘농촌마을 간사’ 모집 기사를 본 것이다. 무주, 진안, 장수를 합쳐 무진장이란 산골오지의 대명사가 된 그곳으로 마을 머슴이 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명목뿐인 월급에 거처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그곳에 가면 그가 젊음을 바쳐 100만평 설록차 농장을 경영한 경험을 우리 농촌을 위해 요긴하게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그가 막상 가 본 농촌은 인재난이 심각했다고 한다. 좁은 땅에서 난 작물은 가격에서 수입농산물에 밀리는 데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젊은이들, 정부지원 사업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전문인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 30년 동안 농촌을 위해 자신을 훈련시킨 하나님께 깊은 감사가 우러난다고 했다. 특히 감동스런 것은 그가 간사생활 동안 자신의 경력이나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바닥에서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그들의 신뢰를 쌓아간 점이다.

그러던 중, 6년 전에 그가 제출한 농촌발전 계획안이 전국에서 응모한 100여 편 중에서 발탁돼 ‘전북 동부권 고추 연합사업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연간 200억원 농림부 핵심 사업으로 진안, 임실군의 1,600 고추재배 농가들을 묶은 브랜드 육성사업의 CEO가 된 것이다.

임실입구에서 몇 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그의 계획대로 1,700평 건평에 168억원을 들여 3년 전에 완공한 첨단 고추공장이 우뚝 서있었다.

그가 말년에 꾸는 꿈은 평생 쌓아온 노하우를 농촌에 전수하는 것과 산골 고추를 세계적 명품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새벽에 마이산에 올라 그 꿈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하산 길에 임실고추장을 듬뿍 넣은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꿈과 땀으로 버무린 밥은 축복의 양식이었다. 요즘 세월호로 무너진 마음에 얻은 자그만 위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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