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러 줄로 나뉘었다

2014-05-1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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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중앙우체국은 뉴욕의 무게를 잡으며, 건축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건물이 마음에 드는 필자는 거의 매일 여기를 드나들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다. 어느 날 건물 안에 들어서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의 풍경과 너무 다르다. 때로는 거의 20미터 가량이나 줄줄이 늘어섰던 단 하나의 긴 줄이 없어졌다. 그 대신 각 창구 앞에는 짧은 줄들이 여럿 생겼다.

고객들이 창구의 일 속도를 살피며 자유로 줄의 선택을 하고 있다. 전에는 긴 줄에서 기다리다가 중앙에서 알려주는 창구로 갔다. 마침 지나가는 장내 관리 직원에게 말했다.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그는 말없이 빙긋이 웃었다. 고객이 창구를 선택함도 하나의 즐거움이니까.


우리는 곧잘 생각 속에 갇힌다. 그 생각은 의외로 견고하여서 깨뜨리기에 힘이 들며,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오랫동안 긴 줄 안에 가두어 놓았던 것처럼, 흔들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청중은 기특하게도 불평하지 않고 이에 잘 따른다.

큰 길 양쪽 차도 사이에 공원이 생겼다. 식탁과 의자가 비치된 이 장소는 앉아서 도시의 풍물을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그 공원은 항상 사람으로 붐빈다. 이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음은 필요했던 시설임을 말하며, 시민들이 좀 더 즐겁고 편안한 환경을 원했다는 증거이다.

날씨가 더워지자 학생들이 수업 진행 중 물을 마시러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여기에 물주전자와 컵이 있어요.” 쟁반을 가리키며 알려주자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게 되었다. 물주전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목마름이 진정되는 모양이다. 목마를까봐 느끼는 염려가 해소되면서 안심하고 할 일을 하는 모양이다.

도시 위 9미터 가량의 높은 곳에 있던 물품 운반용 고가 철도의 용도가 없어졌다. 그것을 철거하지 않고 ‘하이라인 파크’로 만든 것이 인간의 지혜이다. 이 지혜가 바로 인간의 공원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평상시에 공원은 많을수록 좋고, 색다른 공원은 시민을 즐겁게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신념은 생각을 낳는다.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싶다. 누가 24시간 일할 수 있겠나. 왜 한 사람이 일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가. 3부 교대로 일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어떤 일이나 그 목적이 뚜렷하고, 운영방법이 정해지면,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의 목적이 동원될 인원들의 찬동을 얻는 일이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일반인들이 가지는 변함없는 마음이다.

“교실에도 꽃밭이 있으면 좋겠어요.” 교실에 꽃밭을 만들겠다는 학생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몇 개의 화분을 마련하였다. 거기에 씨앗을 뿌리고, 매일 물을 주었다. 이윽고 싹이 트고 자라서 화분마다 예쁜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들이 즐기는 모습은 또 하나의 꽃이었다. 즐거움은 완성된 제품이 아니다. 즐거움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쁨이다.

몇 사람이 모여서 ‘민화 그리기’그룹을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각자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 가지 즐거움을 가졌다고 한다. 같이 모여 ‘우물가 이야기’도 하고, 간식도 나누며, 민화 감상도 하고……. 그래서 빠질 수 없는 행사가 되었다는 설명이 따랐다. 즐거움을 찾는 눈이 밝고, 즐거운 뉴스를 듣는 귀가 열려있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신경이 예민하고, 즐거움 속에 텀벙 뛰어드는 용기를 24시간 열어놓고 볼 일이다.

나 자신은 어떤 힘으로 달라지나?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어떤 힘으로 달라지나? 인류의 역사는 어떤 힘으로 달라지나? 답은 하나다. 사람의 ‘생각’이다. 이 생각은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을 거치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 생각은 세태에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인간의 향상을 지향하는 점 변함이 없다. 결국은 생각이 인간이고,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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