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난 짬뽕!”

2014-03-22 (토)
크게 작게

▶ 나운택 / 자유기고가

예전에 자수성가한 어느 재벌 회장님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면 늘 “맛있는 것들 마음대로 시키세요. 그리고, 난 짬뽕!”이라고 해서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고 한다. 계산을 하게 될 윗사람이 “난 짬뽕!”이라고 하는데, 감히 누가 “나는 팔보채!”라고 눈치 없이 비싼 음식을 시킬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맛있는 것들 마음대로 시키라’는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 얄미운 립 서비스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해명을 했다. 자기는 짬뽕을 정말 좋아해서 시켰을 뿐, 직원들에게는 진심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그래도 회장님쯤 됐으면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자기가 값나가는 음식을 먼저 주문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또 다른 ‘짬뽕 맨’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계모임이나 친목모임 등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대개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이 ‘다양하게 시키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며 “짜장면으로 통일하는 게 어때요?”하면서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뭐…”하면서 분위기에 따라서 순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난 짬뽕!” 이라고 불쑥 내뱉어서 좌중으로부터 따가운 눈총과 함께 무언의 항의를 받는 사람이 한두명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 가든지 늘 툭 불거지고 엉뚱한 제안을 하기 일쑤이며, 모든 일에 따지고 들고 딴지걸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사람들로부터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곤 한다.

캐나다에서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인구센서스를 실시해오고 있다. 그런데, 79세의 한 할머니가 센서스 데이타를 미국 무기제조회사인 록히드 마틴사가 처리한다는 이유로 센서스 양식 제출을 거부하여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최근에 유죄판결을 받아 ‘50시간의 사회봉사’형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세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자기 판단에 따라 과감히 ‘아니오’라고 외친 전형적인 ‘짬뽕 맨’이다.

나는 이런 ‘짬뽕 맨’들을 좋아한다. 우리 사회는 결국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현 체제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법이 없이 늘 이의를 달고 딴소리를 해서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계기를 줌으로써 역사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이다. 역사책에 이름이 오르는 유명한 혁명가, 정치가, 과학자, 발명가들은 전부 ‘짬뽕 맨’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격한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감히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유교적 계급사회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을 비롯하여, 홍경래, 조식, 김육, 박제가, 유몽인, 전봉준,…등 우리 역사 속에도 이런 인물들은 상당히 많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 그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가택연금형을 선고받고 나오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가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난 짬뽕!”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