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슴 저리게 매혹적인 ‘벨칸도 오페라의 진수’

2014-03-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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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 오페라 10년만에 ‘루치아’ 공연

▶ 러시안 소프라노 샤기무라토바의 빼어난 연기력, 20분간 이어지는 광란의 아리아에 전율 또 전율

가슴 저리게 매혹적인 ‘벨칸도 오페라의 진수’

소프라노 알비나 샤기무라토바가 결혼 첫날밤 미쳐버린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 Robert Millard>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보고 싶으면 ‘루치아’를 보러 가시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지난 주말 LA 오페라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 무대에 올린 ‘람메르모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는 여러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올 정도로 잘 만들어진 공연이다.

도니제티의 ‘루치아’는 워낙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라스트 신의 광란의 아리아를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감동을 선사하기 힘든 작품이다.

‘루치아’의 객석은 언제나 이 ‘매드 신’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의 기대치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불세출의 가수가 잔뜩 높여 놓았기 때문에 아무나 루치아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 탓이다.


LA 오페라가 10년 만에 올린 이번 ‘루치아’에서 러시안 소프라노 알비나 샤기무라토바(Albina Shagimuratova)는 이러한 기대를 일시에 충족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샤기무라토바는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결혼 첫날밤 신랑을 칼로 찌르고 미쳐버린 여자의 처절한 절규를 현란하면서도 빼어나게 절제된 기교로 노래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거의 20분간 계속되는 광란의 아리아뿐 아니라 루치아는 1막과 2막에서도 상당히 많은 분량의 벨칸토 아리아를 노래하는데 그녀는 풍부한 성량과 음색, 감정 표현, 거기에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드러매틱 비극 오페라를 여러 편 보았지만 이처럼 가슴 저리게 감동 받은 공연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기무라토바뿐 아니라 연인 에드가르도 역을 맡은 테너 사이미르 피르구도 대단한 공연을 펼쳤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아리아는 루치아의 광란 못지않은 폭발적인 성량과 표현으로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또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 역의 바리톤 스티븐 파웰, 목사 라이몬도 역의 제임스 크레스웰의 열연도 절대 두 주역의 빛에 가려져서는 안 될 명연이었다.

이 프로덕션은 엘카나 퓰리처가 감독을 맡아 테크놀러지와 비디오 프로젝션을 사용한 연출을 보여주었는데 색깔과 그림자로 무드를 연출한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1막에서는 프로젝션을 과다하게 사용한 듯한 느낌이 있었으나 2막과 3막으로 진행하면서 모던한 느낌의 단순화된 무대로 음악과 드라마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공연에만 포커스 하도록 수려하게 연출했다.

기대했던 글래스 하모니카 연주도 좋았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사운드가 미쳐버린 루치아의 심정을 대변하듯 관객들의 귓전을 울리며 공연장을 투명하게 감싸 안는 연주였다.

이 공연을 보고 나서 LA오페라의 무대에 대한 감사와 신뢰가 생겼다. 늘 시카고나 뉴욕 메트에 비해 수준이 뒤진다는 열등감이 있었는데 이제 털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

남은 5회 공연 일시는 3월20·26·29일 오후 7시30분, 3월23일·4월6일 오후 2시.


티켓 19달러 이상. (213)972-8001, www.laopera.org

Dorothy Chandler Pavilion 135 N. Grand Ave. LA, CA 90012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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