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란의 악기? 신비의 소리?

2014-03-1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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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 오페라 ‘루치아’에 등장 눈길

▶ 유리잔으로 내는 울림… 듣고 미치거나 조산, ‘잊혀진 악기’ 마지막 광란의 장면 25분 연주

광란의 악기? 신비의 소리?

글래스 하모니카 전문가 토마스 블록(오른쪽)과 LA오페라 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기자회견에서 악기를 소개하고 있다.

광란의 악기? 신비의 소리?

겹친 유리잔들을 돌리며 연주하는 글래스 하모니카.

15일 LA 오페라가 개막하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모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에는 특이한 악기가 하나 등장한다.

‘글래스 하모니카’(Glass Harmonica). 1761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고안한 악기로 현대에 와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도 드물고 거의 잊혀진 인스트루먼트다.

크기가 다른 37개의 유리잔이 겹쳐 있는 형태의 이 악기는 손과 글래스에 물을 묻히고 발로 페달을 밟아 돌리면서 손으로 글래스를 만져 소리를 내는 하모니카다. 손으로는 음을 만들고, 발로는 속도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으로, 특이한 공명이 울리면서 굉장히 신비하고 최면적이며 환상적인 소리를 낸다. 하모니카보다 60년 전 만들어졌다는데 하모니카에서 나는 쇳소리 대신 유리잔의 마찰에서 나는 맑은 울림으로 연주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도니제티의 ‘루치아’는 사랑 때문에 미친 여자에 관한 오페라로서, 라스트 신의 광란의 아리아를 백미로 꼽는다.

벨칸토는 180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서 유행했던 장르로, 소프라노가 극도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현란하고 빠르고 높낮이가 심한 아리아를 오래 계속하게 되는데 그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 종종 미친 여자를 등장시키곤 했다. 또한 그 시대에는 미치는 것이 아주 흔한 병이었다고 한다.

로시니, 벨리니와 함께 벨칸토의 3대 작곡가로 꼽히는 도니제티는 ‘루치아’의 매드 신(mad scene)에 유리 하모니카의 연주를 넣었다. 그런데 당시 이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진짜로 미치거나 아기를 조산하거나 연주자들이 일찍 죽는 등 불상사가 계속 일어나자 1835년 경찰이 이 악기의 연주를 금지시켰고, 이후 플룻으로 연주가 대체됐다.

불상사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 현대과학자들은 당시 유리컵에 사용됐던 다량의 납과 페인트의 유독성분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악기의 소리가 내는 고주파가 신경을 자극해 사람들을 쉽게 흥분시킬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아마 그래서 광란의 장면에 사용했다고 보는데, 그때는 ‘악마의 악기’라 불리며 1시간 이상 들으면 위험하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LA오페라의 ‘루치아’에서는 이 글래스 하모니카의 연주를 마지막 광란의 장면에 25분간 들을 수 있다. 토마스 블록(Thomas Bloch)이라는 뛰어난 연주자를 초청, 오리지널 ‘루치아’를 선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연주자인 블록은 옹드 마르트노, 크리스탈 오르간 등 희귀악기 전문가로, 글래스 하모니카를 복원시켜 세계무대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최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열린 ‘루치아’에서 처음 이 악기를 연주해 각광 받았다.

지난 7일 LA오페라는 토마스 블록과 글래스 하모니카를 소개하는 미디어 행사를 마련, 악기를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음악연주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블록은 파리 콘저바토리에서 공부할 때 올리비에 메시앙을 통해 처음 유리 하모니카를 보고 매료돼 악기를 공부했다고 말하고 이 악기를 위해 쓰여진 작품은 400여개가 있는데 ‘루치아’의 매드 신이 가장 나중에 쓰여진 작품으로 가장 유명하며, 모차르트도 후기에 2곡을 썼고, 베토벤은 아주 짧은 곡 하나를 남겼으며,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음악에도 잠깐 등장한다고 소개했다.

LA 오페라가 10년만에 무대에 올리는 이번 ‘루치아’에는 대망의 여주인공으로 올해 초 라스칼라에서 이 역으로 센세이셔널한 호평을 받은 러시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알비나 샤기무라토바(Albina Shagimuratova)가 출연, 처절한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며 열연할 예정이다.


6회 공연 일시는 3월15·20·26· 29일 오후 7시30분, 3월23일·4월6일 오후 2시.

티켓 19달러 이상.

(213)972-8001 www.laopera.org

Dorothy Chandler Pavilion: 135 N. Grand Ave. LA, CA 90012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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