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52> 앙투안 프레보 ‘마농 레스코’
사랑할 때 사람은 바보가 된다. 특히 한 눈에 홀딱 반해 버리는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사랑 스토리를 그려낼 때 먼저 그 결말을 정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피엔딩이 될 것인지 비극적인 종말이 될지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야 어디 그런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눈 먼 사랑 이야기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정하의 ‘눈이 멀었다’ 中
마농 레스코는 한 눈에 반한 청춘남녀가 강렬한 사랑의 햇빛에 눈이 멀어져 그저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았던 둘만의 애정행각을 즐기다가 나중에는 비극적인 종말로 끝을 맺게 되는 프랑스 낭만주의 연애소설의 시조다.
주인공 마농 레스코는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미모와 우아함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마농은 수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는 도중 하룻밤을 묵게 된 숙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귀공자 데그리외를 만나게 된다.
마농과 데그리외는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영혼의 진동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충격 가운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함께 동행하는 사람을 속이고 마농은 데그리외와 함께 파리로 도주한다.
그들은 얼마 동안 꿈결 같은 생활을 하지만 마농의 어찌할 수 없는 낭비벽과 천성 때문에 문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마농은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할 수는 있었지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마농은 데그리외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물질의 유혹과 향락에 빠져 돈 많은 제론테라는 늙은이의 애첩 노릇을 하는 이중생활을 한다. 그러다 도박판에서 제론테 영감에게 고발을 당해 당시 프랑스 죄인들의 강제 추방지였던 미국 뉴올리언스로 쫓겨나게 된다.
데그리외는 자청해서 두달 동안 배를 타고 마농과 함께 뉴올리언스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며나가고 싶었지만 마농의 방탕 끼는 뉴올리언스에서도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켜 사람의 복수가 두려워 사막으로 도주하던 중 마농은 병들어 데그리외의 품에 안겨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농 레스코는 18세기 중반 출판과 동시에 프랑스 전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윤리, 도덕성 측면에서 보면 껄끄러운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작가 프레보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심리를 섬세한 그림처럼 풀어나갔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편 마농 레스코는 소설로서보다는 이를 각색 연출한 푸치니의 오페라로 더욱 유명하다. 푸치니는 이처럼 드러매틱한 마농과 데그리외의 눈 먼 사랑이야기, 그래서 파멸의 길로 치달았던 비극적인 사랑을 5막의 오페라로 각색해 무대에 올렸는데, 오늘날까지 푸치니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