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연리뷰 LA 오페라 ‘빌리 버드’
▶ 군함 위 펼쳐지는 선악 갈등 가장 남성적 오페라 불구 돋보인 벤자민 브리튼 음악 배역·코러스 흠잡을 데 없어
선하고 아름답고 리더십도 있는 빌리는 선원들 사이에 인기도 높다. 빌리 역의 리암 보너가 열연하고 있다. <사진 Robert Millard>
군함, 선원들, 모함과 갈등, 살인, 군사재판, 교수형…이토록 무거운 내용을 가진 오페라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22일 개막된 LA 오페라의 ‘빌리 버드’(Billy Budd)는 여자가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전함 위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부딪침을 다룬 가장 남성적인 오페라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투명하게 빛나는 음악은 이 공연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게 하고 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공연자들의 대단히 수려한 퍼포먼스와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바다의 바람과 물의 색깔이 느껴지는 음악이다. 보통 오페라를 관람하다 보면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에 집중하느라 오케스트라 음악은 반주로서 흘려듣게 되는데,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따로 들리는, 아니 어느 순간에는 악기들이 각자 특별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무대를 채우고 있다. 지난 3년간 벤자민 브리튼 100주년 축제를 주도해온 콘론의 연주가 찬란히 빛을 발하는 공연임을 느끼게 된다.
바리톤 리암 보너는 착하고 아름답고 리더십도 있어서 선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청년 빌리 역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순진무구하고 열정적으로 표현한다. 노래와 연기는 물론 완벽하게 잘 생긴 외모까지, 더 이상 좋은 빌리 역은 한세기 동안 나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
빌리를 열망하면서도 그를 파괴하려는 악의 현신 클래거트 하사관 역의 그리어 그림슬리(베이스 바리톤)와 빌리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군법과 질서를 위해 처형을 선택하는 비어 선장 역의 리처드 크로프트(테너), 그리고 갑판 위를 오가는 모든 배역과 코러스, 어린 소년들이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거대한 뱃머리를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갑판 위와 선박 아래 장면을 연출한 세트 프로덕션도 볼만 하지만 빌리가 자주 올라가는 돛대는 십자가를 연상케 함으로써 세상의 악에 희생되는 지고의 선인 빌리와 예수를 겹쳐 보이게도 하고 있다. 약간의 동성애 코드도 있는 작품이지만 그것이 오페라 공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남은 공연 일시는 3월5·8·13일 오후 7시30분, 3월2·16일 오후 2시.
티켓 19달러 이상.
Dorothy Chandler Pavilion, 135 N. Grand Ave. LA, CA 90012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