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000리 ⑦ 로스 아르꼬스에서 나헤라까지
▶ Viana 마을은 옛 템플 기사단 머문 곳, 잘 지어진 성당선 숭고한 신앙 느껴져
먹고 자고 난 다음 알아서 돈을 통에 넣고 가라고 한다.
아침 햇살에 그림자가 길다. 산천이 평화롭다.
▲5월3일
새벽 6시 출발. 먼동이 튼다. 아침 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길가엔 배추꽃이 노랗게 피어, 녹색 밀밭과 잘 어울린다. 멀리 동산 위 마을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추인다. 산천이 평화롭다.
Sansol 마을이다. 식전 80리라더니 어느새 20리를 걸었다. 밋밋한 산등성이에 포도밭과 밀밭, 그리고 간간히 올리브 농장이 섞여 있다.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간다. 걷기 대회도 아닌데 죽을 둥 살 둥 걸어가는 사람이 보인다. 좋은 술은 코와 혀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이 나는데, 이 길을 저렇게 걷는 것은 비싼 양주를 막걸리 사발에 부어 꿀꺽꿀꺽 들이키는 격이 아닐까.
확 트인 넓은 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가리, 저 넓은 길을 / 힘차고 자유롭게, 내 앞에 펼쳐진 세상 / 내 발길 가는 곳 어디든 길게 이어진 갈색의 길 // 떠나는 길에 나는 행운을 바라지 않으리 / 나 자신이 행운이니 /… 기꺼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이 광활한 길을 떠나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Song of the Open Road’ 한 구절이다.
아내는 어디만큼 걷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작은 마을 둘을 지나니 Viana라는 마을이 다. 탬플 기사단이 이곳에 머물며 화폐를 환전해 주고 관세를 징수한 역사적인 도시라 했다. 언덕에 올라서니 장이 섰다. 제법 큰 장터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운타운으로 들어선다.
3층 돌집이 줄지어 서있다. 나무로 만든 빛바랜 둔중한 문이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한 번 지어놓은 건물에 몇백년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으니 집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 국보 1호 숭례문 개축이 날림공사라며 말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처음부터 집을 튼튼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짓기 시작하여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지 않는가.
성당 앞에서 쉬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육중한 건물, 정교한 돌조각으로 장식한 성당 입구가 눈길을 끈다. 함께 들어가 조배를 드렸다. 어제 저녁 들렀던 로스 아르코스 성당 수준으로 내부가 화려하다. 저렇게 꾸미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까. 성당마다 그렇게 큰 규모로 화려하게 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수도원은 또 어떻고, 하며 짚어가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제정일치(祭政一致)였던 시대, 대사제가 왕을 임명하던 그 옛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한 마디를 누가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신의 집을 단장한다는데’ 어떤 사람이 감히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생각하니 의문이 순식간에 풀렸다. 천년 역사를 지닌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로그로뇨 도시 입구에서 할머니가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11세기부터 주교관이 있는 큰 도시다. 알베르게에 먼저 온 순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순서에 따라 방을 배정받는데 우리 앞에서 끝이 난다.
김 사장 부부와 함께 터덜터덜 걸어서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간다. 잘 곳을 찾지 못하면 다음 도시까지 더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침대는 동이 났으니 강당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라고 한다. 이렇게라도 하룻밤 자고 갈 수 있으니 감사할 수밖에.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지만 돈은 받지 않으니 나가면서 도네이션 함에 알아서 넣고 가라고 한다. 순례자를 위한 무료 숙박소인 셈이다.
오후 8시30분 식사시간. 20여명의 순례자들이 식탁에 앉았다. 샐러드가 나온 다음 빵이 나오고, 감자와 호박을 넣어 끓인 국이 차례로 나온다. 와인도 곁들인 썩 괜찮은 식사다.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남쪽인가 북쪽인가 질문을 한다. 한반도의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5월4일
5시 기상. 좀 더 자면 안 될까요, 라고 미세스 김이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나도 혼자말로 대답해 드렸다. 집에 가시면 푹 주무세요. 식당에 빵과 우유, 그리고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 도네이션 통에 돈을 넣는데, 김 사장이 그 장면을 찍어두어야 한다면서 카메라를 치켜든다. 벌써 여러 날을 김 사장 부부와 함께 걷고 있다.
바람결이 차다. ‘기아자동차’ 전시관이 보인다. 반갑다. 벽에 낙서가 어지럽다. 낙서는 왜 저렇게 기승을 부릴까. 미국에도 프랑스에도 또 이곳도. 그런데 낙서야 말로 인간 심리를 대변하는 흔적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피라밋 지하의 낙서를 통해 그 옛날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고. 화장실 낙서만큼 인간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세탁소 간판이 보인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표도 보이지 않는다. 몇 시쯤 영업을 시작할까. 낮잠 자는 시간을 빼면 이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 일을 한단 말인가.
콘도를 짓고 있다. 허물어진 집터에 짓는 집이다. 한 동에 24만500유로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달러로 30만불 정도다. 문 앞에 붙어 있는 문패들이 독특하다. 이름 위에 새겨진 문양은 가문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포도밭이 많다. 자세히 보니 밭에 돌이 많다. 자갈이 많아서 포도밖에 심을 게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레에 가방을 메어 끌고가는 독일 할아버지가 “뭘 그리 보고 있느냐”고 말을 건넨다. Waldenmar Rasche라고본인을 소개한다. 독일에서 왔는데 올해 76세란다. 수레에 배낭을 싣고 걷는데 젊은이 뺨치게 잘 걷는다. 유럽인들의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다. 보폭이 크고 빠르다. 우리는 하루 평균 4킬로를 걷는데 저들은 하루 평균 5킬로, 혹은 6킬로쯤 걷는다고 한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한국 소나무와 같은 종류다. 오랜만에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다르다. 꼿꼿하게 뻗어 있는 솔잎을 바람이 스쳐갈 때 떡갈나무나 버드나무 숲을 지날 때와는 다른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소나무 숲이 꽤 오래 계속된다. 한국 어디쯤이 아닌가 착각이 든다. 나헤라 입구, 공장 담에 시 한편이 10미터도 넘게 길게 적혀 있다. 이 근처 성당 에우제니오(Eugenio) 수사님이 써놓은 것이라 한다.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렀는가. 어떤 감춰진 힘이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는가?…”로 시작되는 시다. 따지고 보면, 저 글도 낙서가 아닐까.
3시15분 알베르게 도착. 이곳도 어제처럼 도네이션 함에 알아서 돈을 넣으면 된단다. 매트리스에 누웠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중세 유럽의 탁발 수도회가 소중하게 여긴 설교 주제였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했다. 몇 사람이 밤늦도록 밖에서 고성방가를 하며 떠든 덕택에 잠을 설쳤다. 술이란 게 사람을 저렇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