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어의 장벽

2013-1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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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정 / UC 버클리

▶ 여론마당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과 두려움은 그 일이 반복될수록 처음의 감정은 무뎌지고 익숙함과 노련함이 대신 차지하게 마련이다. 나에겐 영어가 그런 존재다. 영어를 처음 배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에 처음 와 언어의 장벽을 맞이하였다. 나는 아직도 미국에 정착하고 얼마 안 되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나는 그나마 나보다 영어가 더 능숙했던 한국인 친구들과 그 아이들의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다녔었는데 하루는 내 한국인 친구들이 다 없어지고 한 외국 여자 아이와 나만 둘이서 쉬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몇 십분의 침묵이 흐르면서 그 아이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던 나를 향한 답답함과 신경질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 후에 미국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나는 영어를 빠른 속도로 배웠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2년 후엔 친구들과 영어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정도의 실력으로 영어를 구사하였다. 한국에서의 몇 년 간 학업 후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며 나의 두 번째 언어는 다시 익숙해졌다.


그리고 영문학을 전공하는 지금, 나는 가끔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때의 그 신기함과 설렘, 그리고 학교에서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영어를 쓰는 것은 너무나 익숙해 두려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그런 것이 되었다.

그 어느 날처럼 강의를 듣고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처음 미국에 와서 영어가 서툴러 매일 학교 선생님과 단둘이 동화책을 큰소리로 읽으며 영어를 공부했던 때가 기억이 나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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