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호길 시선집 `떠돌이의 혼’ 출간
▶ 칠순·시력 50년 맞아 드라마틱 인생 스토리 한 권의 시집에 담아
시조시학 2012년 가을호에 특집 소개된 김호길 시인의 커리커처 표지화.
시인과 농부와 파일럿,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세가지 일을 하며, 한국과 미국과 멕시코, 세 나라에서 살아온 남자. 그 이야기가 너무도 처절하고 참담해서 시로서밖에는 남길 수 없었던 사람. 그의 한맺힌 비명과 목마름의 결정체들이 도리어 풍요의 땅에서 위로와 감동과 희망을 남기는 시인.
<바보 농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그곳
한 이십오년전쯤 그곳에 빈손으로 들어갔단다.
꼴머슴 산 적도 없는 내가 빈손으로 들어갔더란다.
미쳤지, 진짜 미쳤지 어쩜 그럴 수가 있는가.
파일럿은 왜 치우고 사막 농부가 웬 말이냐
그때는 죽으러 갔지, 살러 간 것은 아니란다.
요렇게 죽지도 않고 그래도 괜찮은 농부가 되어
시도 쓰고 할 일 더 많아 아직 꿈꾸고 있잖아
용기가 죽을 용기가 없던 난 그래 바보 농부란다.
올해 칠순을 맞고 시력 50년을 맞은 김호길 시인이 자신의 유별난 인생노래를 한권에 담은 시선집 ‘떠돌이의 혼’(고요아침 발행)을 냈다.
이제껏 나온 4권의 시집-‘하늘환상곡’(1975) ‘수정목마름’(1990) ‘절정의 꽃’(2000) ‘사막시편’(2012)에서 각 25편씩 고르고, 제5부에 미발표 신작 27편 등 총 127편을 수록한 책이다.
이 시집과 1년전 출간한 ‘사막시편’으로 김호길 시인은 지난 30일 서울서 시조시학 문학상 본상을 수상했고, 오는 6일에는 국제펜클럽이 수여하는 제2회 송운시조문학상을 수상한다. 40년 넘게 농사지으며 멕시코 사막에서 ‘귀양살이’하느라 한국 시단에서는 얼마큼 소외돼있던 외로운 원로시인이 뒤늦게나마 얼마간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위에 소개한 ‘바보 농부’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인의 마음을 가장 간단하고 담백하게 담은 작품이다. 16년 조종사로 살면서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대한항공에서 보잉 747점보기도 몰았던 그가 어쩌다 미국에 와서 농부가 된 사연, 그리고 그때부터 고생고생하며 살았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나 드러매틱해서 언젠가 LA타임스가 특집으로 소개했을 정도지만, 시인 자신은 언제나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먼저 눈물부터 흘려버리고 마는 귀농시인의 전설이 되었다.
“말이 좋아 귀농시인이고 빛 좋은 개살구”라고 일갈하는 김 시인은 “농부가 된건 내 일생 최대의 실수였고 내 삶의 가장 처참했던 바닥이었으며 지옥의 끝이었다”며 농부시인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무참히 짓밟는다. 지금에야 꽤 성공을 거두어 160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을 일구고 국제무역유통회사도 차렸지만 수십년을 절대고독과 극한환경의 사막에서 버티며 오기와 독기, 설움과 울분, 슬픔과 절망을 거쳐온 세월이 예민한 시인의 혼과 감성을 아마도 심하게 상처낸 모양이다. 그의 시가 그토록 간결하고 아름답고 순수한건 어쩌면 수천수만번 마음결에 맺힌 한들이 응축되고 정제되고 승화되어 하늘 높이 연으로, 별로, 조각달로 비상하며 꽃길을 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떠돌이의 혼’에는 단 두줄 혹은 세줄의 시도 많다. 짧으니까 몇편 옮겨보면.
오로지 감사할 일만/ 남아있는 저 사막. (‘감사하네, 저 모든 것’)
날개 밑/ 펼쳐진 사막/ 그가 다스리는 원의 세상. (‘독수리’)
만나서/ 무지 반갑구나,/ 간이라도 떼어주고 싶네. (‘고향 까마귀’)
1967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김호길 시인은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현대시조문학상, 미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