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이중성 처절히 해부
▶ 연기·연출 뛰어난 감동 무대
뮤지컬 ‘불의 가면’(김유연 연출·문지현 기획)이 현재 윌셔 아트센터(구 엠팍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극단 LA의 창단 21주년 기념 무대로 두주 만에 벌써 타운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유명세를 톡톡하게 치른 알베르 카뮈 원작(칼리굴라)에 박상륭이 소설로, 이를 다시 이윤택이 희곡으로 각색해 이미 숱한 한국 무대에서 열렬한 각광을 받아온 터다. 객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배우들의 화려하고 절절하고 열띤 연기력과 인생의 축소판을 수놓은 듯 정치적, 철학적, 종말적인 패륜의 대사들, 그리고 음악과 의상과 조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구석 소홀하지 않은 무대가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기립박수와 환성이 이어지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너무 아깝다. 더 오래 공연하라”고 강요 섞인 부탁을 들을 정도로 누구나 한 번쯤 필히 감상할 만한 수작이다. 11월24일까지 총 4주(목ㆍ금ㆍ토ㆍ일) 16회 공연.
무대 위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권력과 불과 아편과 성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여기에 김유연의 놀랍도록 강렬하고 섬세한 연출력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심금을 울리는 아리아들이 영혼을 휘감고, 오랜만에 관객은 깊은 마력에 젖어든다.
왕과 지식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지식의 헤게모니 쟁탈전, 이 두 인물을 통해 인간 본래의 이중성은 처절할 정도로 벗겨지고, 시의는 자신의 몸속에 매독 균을 배양해 왕과 여옥,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자초하기에 이른다.
극단 LA와는 벌써 세 번째 무대, LA 연기자들이 총력을 기울여 만든 이 작품은 아마도 연극은 왜 하는가의 대답을 명쾌하게 들려줄 것이다. 자화상을 만나기 위한 인간의 끈질긴 속성은 연극이라는 거울을 통해 그 비밀들을 캐게 되기 때문이다. 왕과 시의, 그리고 여옥과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시녀장, 검은 종자, 도망자 부부, 대신 등 황금의 배역들은 이 섬을 어느 순간 마지막 바벨론 문명으로 바꾸며 관객을 이끌어가는 듯 저력을 과시한다. 섬이란 당초 신이 설계한 탈출 불가능의 유예된 공간이 아닌가.
태초부터 불을 종교(화룡제)로 섬겨온 가증한 인간세계는 계속 제물을 태우면서 섬(문명)의 갈망과 역사를 쌓아가지만 결국 불은 문명을 송두리째 태우는 독소로 작용한다. 제물이 되려고 불가마로 올라가기 전 왕의 마지막 고백은 ‘나는 방화범이 되고 싶었어!’다.
작곡 김호인과 연출의 노랫말 역시 가슴을 후빈다. 한인 연극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극단 LA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특별기고 이자경(극단 LA 고문·이민사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