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그네 고향, 라구나 우즈

2013-11-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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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주 / 라구나 우즈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나그네라는 존재, 뜬 구름처럼 시냇물 흐르듯 정처 없는 떠돌이란 말인가. 이백은 세상은 여관이고 세월은 지나가는 나그네, 그래서 ‘역려과객’이라 했다.

불설비유경에 안수정등이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에게 쫓기다가 우물 속에 피신하여 등나무 줄기에 매달린 나그네, 위에서는 흰 쥐(낮)와 검은 쥐(밤)가 번갈아 등나무 줄기를 갉아대고 우물 아래는 이무기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우물 사방에서는 독뱀이 혀를 날름거리는데 벌들이 윙윙거리는 등나무 벌집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꿀을 핥아 먹으며 꿀맛(오욕)에 도취해서 위기와 공포를 잊고 있는 존재, 그게 바로 나그네 중생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란 남을 편하게 태워주는 ‘나는 그네’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야말로 흔들흔들 남을 밀어주는 봉사의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


라구나 우즈는 어바인 시 남쪽에 인접한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사는 숲 속의 도시다. 여기는 5학년 5반(55세)부터 입학할 수 있는 학생 기숙사다.

필수 과목은 골프, 선택 과목은 라인 댄스, 취미 과목은 각종 특별활동, 전공과목은 봉사활동이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타이치로 아침을 열고 의학 상식 나누고 컴퓨터 배우고 장구치고 춤추고 합창하고 수영하고 그림 그리고 목공하고 재봉하고 외국인에게 한글 가르치고 텃밭을 가꾸어서 상추며 호박도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그러나 여기 학생들은 마음도 젊고 얼굴도 젊게 산다. 이곳 사람들은 ‘라구나’를 스스로 ‘낙원’이라고 부른다. 서로 밀어주는 나그네들의 고향이다.

27홀의 골프 코스는 어디를 가나 토끼들이 뛴다. 토끼 천국이다. 여기 토끼는 노인의 심볼이다. 죽는 날까지 토끼처럼 뛰면서 활동해야 한다.

많은 세월 조연으로 살아왔다. 이제 “라구나- 나구나!” 내 인생을 찾아 감탄으로 살고 싶다. 인생의 마지막 무대를 주연으로 마감하고 싶다. 잿불도 별처럼 한 번은 반짝인다. 욜로(You Only Live Once)! 한 번 사는 인생이기에 사고 한 번 멋대로가 아니라 제대로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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