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인디안 서머(Indian Summer)’인가 유난히 덥더니 지난 주 부터 금주에 이르기까지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더니 오늘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집을 나서서 좌회전을 하려니 신호등이 적색이다. 운전석 옆에 앉은 나도 사방을 살피다가 위를 보니 급강하한 기온 탓에 온기가 그리워서일까. 까마귀 서너 마리 적색 신호등에 바짝 앉아서 젖은 날개의 빗방울을 털어내기도 하고 공중에 뻗어 나온 파이프에 흐르는 빗물도 마시며 참으로 여유만만하다. 가의 없어 보이는 하늘도 조류가 날으는 범위는 한계가 있고, 황량하게 넓고 깊기만 한 바다도 어류가 유영(遊泳)하는 유역은 정해져 있다.
불가사의 하고 모순투성이 인생, 의식하고 살아가는 일상 인간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 나의 작은 포치(Porch) 안으로 풍성한 가을이 들어왔다. 드넓은 초원을 마음껏 달리며 자라서일까. 익살스런 타조의 기다란 목처럼 만들어진 유리 화병에 오렌지색으로 곱게 물들어 알알이 영근 보리이삭 한 묶음 사와서 꽂고, 짙은 자줏빛 계관 맨드라미 몇 대 곁들였더니 화두(花頭)가 너무 무거워 밑바닥에 널려 있는 화초 호박 내려다보며 속삭이는 것 같다. 유난히 덥고 건조했던 여름,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어려워 물을 너무 자주 준 탓에 ‘워터 쇼크(water shock)’에 빠져 주목(朱木) 분재 몇 개 잃고 허전해 하던 차에 전문가 K의 손으로 직접 다듬어진 분재가 몇 개 들어와서 기쁘다.
우리에게 가을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가을은 시각적 황홀함이 넘치는 계절. 시서(詩書)를 많이 한다고, 사색은 더욱 깊어간다고, 유난히 청명하게 들리는 고전음악에 취한다고, 인생행복을 추구하는 연혼의 방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닐진데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함수를 풀어나가는 적기가 가을이 아닐까.
나의 작은 포치에 새로 들어 온 분재 가족, 종자로부터 길러진 파이어 버드(Fire Bird) 색깔의 단풍, 은행나무 유난히 과육이 큰 무화과나무, 흔하지 않은 오죽(烏竹), 흑송 등등 작품으로 감상하기에는 아직 남은 과제가 많다. 20여 성상(星霜)을 함께 한 멕시코 원산의 포니테일 플랜트, 견고하고 둥근 밑둥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몸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잎 새, 옛 시골처녀 댕기머리 하듯 여러 갈래로 땋아 놓았는데 지저분하다고 K전문가의 견식으로 시원하게 싹둑 잘려나갔다.
추억의 조선호텔, 컬러 사진에 16mm영사기까지 동원됐던 우리들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 그 조선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전 있었던 도예 작가의 초기 작품 2개. 3단계 받침대에 올려져 있고 맨 위에 올려진 플라밍고 플랜트(Flamingo Plant)는 왜 생기를 잃어 가는지. 그 뒤 브라운 색 타원형의 바구니에 담겨 있는 가을의 풍요, 왜소한 바나나와 싱싱한 계절 과일이 쌓여져 있는데 나는 왜 먹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는지. 내 마음의 안식처 다목적인 작은 포치에서 차 한 잔의 그 맛은 참으로 향기 넘친다. 이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