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벌써 치매

2013-10-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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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언의 길 위의 이야기

마흔줄에 접어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물리적인 기능들이 쇠퇴하는 걸 느낀다. 노인들의 퇴행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거나 오래 서 있는 게 힘들거나 이런 증후는 아직 없지만 나만이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씁쓸한 변화가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엄살을 부리려는 게 아니다. 특히 갈수록 기억력이 형편없어진다. 이는 잦은 음주의 결과임이 분명한 것일 텐데, 딱히 회복을 기대할 만한 방도를 알 수 없어 더 답답한 노릇이다. 술을 끊으라고 누가 말하고 싶다면 그 사람은 술을 대신할 수 있는 스트레스 퇴치 처방까지 함께 내려 주어야 한다. 지난주에 어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무언가에 대해서 열심히 아는 척을 하다가 코맥 매카시를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 순전히 착각으로 이언 매큐언을 말하고 말았다. 코맥 매카시는 칠순이 넘은 미국 작가이고 이언 매큐언은 그보다 젊은 영국작가이다. 아무튼 내가 결정적인 고유명사를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얼굴이 매우 화끈거린다. 예전에도 단어나 명사가 생각이 안 나거나 헷갈려서 낭패를 본 적이 많았는데, 이를 테면, 재즈음악을 하는 팻 매스니를 말한다는 것을 키스 자렛이라고 헛말을 한 적도 있고, 심지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를 헷갈린 적도 있다. 아, 벌써 이 나이에 치매인가. 차라리 냉장고와 세탁기를 헷갈리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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