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끄러웠던 하루

2013-08-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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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일 / 자영업

드라이클리닝 가게를 하고 있을 때 매일 가게 앞을 지나는 맹인이 있었다. 정확한 시간에 출퇴근 하는 그는 막대기 하나를 의지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세탁물을 가지고 왔다가 3일 만에 찾아갔다. 약 1년 후 시청에 일이 있어 갔더니 그가 매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간단한 스낵과 커피를 시킨 후 얼마를 치러야 하는가 물었더니 “안녕하십니까. 스타클리너에서 오셨군요. 요즘 장사는 어떠십니까?”라고 안부를 묻는다. 소리로 나를 인식한 것인지 아니면 미약한 시력으로 알아본 것인지는 몰라도 깜짝 놀랐다. 엉겁결에 그냥 “네 네” 하고 돈을 치른 후 옆에서 다음사람이 계산하는 것을 보는데 100달러짜리를 받은 후 인사를 하며 정확하게 계산을 했다.

장애 속에서도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그를 보면서 가지고 있는 것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 온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맹인의 경우 보통사람보다 촉각이 더 발달하고 특히 귀가 한층 더 예민해 진다고 한다.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맹인이었지만 눈뜬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지혜를 찾아내 인류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해 줬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인고와 질곡의 험로를 어떻게 보통사람들의 그것과 견줄 수 있을까.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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