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기를 준 한마디

2013-08-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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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수 / 메릴랜드

두어 달 전에 동네 한 바퀴를 돌던 누나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는 얼굴로 들어왔다. 밖에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럴 일이 있다고만 했다. 한 달 후면 갑상선 수술을 받아야하는 누나는 두려움에 떨고, 무서움에 떨고, 잘못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공원에라도 다니라고 해서 마지못해 한 산책이었기에 더 궁금했다.

누나는 일주일 전부터 모녀가 산책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산책 하던 모녀가 옆에 앉으며, 우울해 하는 누나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어오더라는 것이다. 누나는 한 달 후에 갑상선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이러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의사가 살려 준다는데 왜 걱정을 하느냐”라고 하며 세상에는 수술을 받고 싶어도 수술을 해 주지 않아서 살수가 없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느냐면서, 자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는 것이다. 폐암 말기로 앞으로 길게 살아야 5개월 정도 살 수 있기에 딸과 좋은 추억이라도 만들려고 이렇게 힘에 부쳐도 산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를 내려놓는 기분이 들면서 머리가 맑아 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한 달 후 우리 누나도 수술을 받을 때 그 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수술을 받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속으로 의사들이 살려 준다는데, 고쳐 준다는데 하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잠에 빠져 들었다고 했다. 이제는 항암치료도 끝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누나를 보면서 생명을 존중히 여기며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또는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의사 선생님이 고쳐 준다는데 마음을 편하게 하시고 힘이 들더라도 용기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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