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의 제전과 부활

2013-07-0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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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용 제 <안과의사>

음악역사상 손 꼽히는 작곡가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일은 늘 있지만 어느 한 작품의 초연을 기념하는 일이란 기억에 없는데 지난 5월29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봄의 제전’(The Right of Spring)의 1913년 같은 날 파리 샹제리 극장에서의 초연 100주년을 곳곳에서 기념한 것은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31세 젊은 나이의 러시아 작곡가가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태고의 의식을 무용화하는데 쓴 이 작품의 강렬한 리듬과 원시적 색채의 선율은 그 당시 관중에게 극도의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곡을 예상 못한 관객들은 처음부터 웅성거리다 야지와 소란을 피우고 이를 저지하려는 관객들과 언쟁이 벌어진 난장판이 발레와 음악을 덮어버렸고 관객 속에 있던 작곡가는 무대 뒤로 피신을 하고 생상스 같은 유명한 음악인들도 미친 사람의 음악이라며 연주장을 나가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 난장판의 초연이 지금 와서 기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스트라빈스키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곡은 보통 레퍼토리의 한 곡으로 자리를 잡았고 오는 23일 할리웃보울에 가면 들을 수 있다.


위에 못지않은 초연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1895년 12월13일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작곡가 자신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초연이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200명의 합창단 그리고 소프라노와 앨토 두 솔리스트의 5악장에 걸친 한시간반의 연주가 마지막 부분에서 종이 울리는 가운데 부활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승천하는 장면으로 끝나자 관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껴안고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불륜을 고백하고 속죄를 구하는 교회 부흥회에서나 일어나는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 20대의 젊은 말러가 6년에 걸쳐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비교될 것을 의식해 온갖 정성을 다 퍼붓고 쓴 이 곡은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곡에 미쳐 자기 자산과 생애를 이 한 곡에 바치고 이 곡만을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인이 된 한 사업가가 생기기도 했다.

디즈니홀 개관 연주회를 장식했던 이 곡이 오는 9일 할리웃보울에서 다시 연주된다. 이 두 작품같이 극치의 감동을 일으키는 작품이 현대는 나오지도 않겠지만 설사 나온다 해도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일을 실시간 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매일 보며 굳어진 감수성으로 사는 현대인은 100년 전 그 초연의 장면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지 않다. 옛날이 그립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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