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갑의환향

2013-06-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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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로 그린 삶

▶ 이정아

일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작년 5월에 엘에이를 떠나 한국에 가서 수술받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꼬박 일년이다. 간단할 줄 알았던 수술이 우여곡절을 겪었다. 항암치료에 신장 적출, 투석을 거쳐 신장이식을 받았으니 살아 돌아온 것이 감개무량하다. 신장이식수술도 모자라 나중엔 허리골절까지 당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닌 ‘갑의환향’(鉀衣還鄕)인 것이 특별하다고 해야 할지. 쇠막대와 고무천과 끈으로 엮인 갑옷모양의 코르셋을 입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남편은 나를 돌보느라 그 사이 7번을 한국엘 다녀갔다. 다녀갈 때마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는지 살림을 잘 하고 있다고 염려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식사도 알아서 척척 빨래와 집안 건사도 잘한다니 그렇게 믿었다.

비행기의 착륙정보가 목적지까지 600㎞ 한 시간 남았다고 화면에 뜨자 가슴이 더욱 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고 정다운 친지들이 있는 곳.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던 이들이 있는 미국이 가까워 올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집 마당엔 살구와 단감이 초록 열매를 맺고 레몬이 노랗게 달렸으며 복숭아도 가지가 휘도록 달리고 토마토도 무성하고 상추도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내가 없다고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자연은 의구했다.

그러나 집 안에 들어와 둘러보니 벽 모퉁이마다 거미줄이요, 마루 구석구석엔 먼지가 뭉쳐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냉장고 속엔 일년 전에 장을 봐놓았던 음식물들이 냉동된 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거실 벽엔 2012년도의 달력이 해를 넘겨 붙어있고 책상 위 탁상용 달력도 작년 내가 떠나던 달에 멈춰 있었다.

살림하던 주부가 부재중이었던 우리 집은 묻어놓은 타임캡슐 같았다. 작년 한 해의 메모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장대와 식탁의자에 켜켜이 쌓인 먼지도 욕실 타일 사이에 낀 묵은 때도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충성심 많은 하인이 주인 기다리듯 말없이 기다려준 무생물이나 미생물에 공연히 고마웠다.

언제 정지되었는지 모를 사발시계의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자,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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