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LACMA서 회고전
▶ 밀폐 공간서 빛의 이미지·완전한 암흑 체험 어느 새 태초의 빛과 종교적 영감 속으로 한인 큐레이터 기획, 50여점 2개 전시관에
초기작품‘흰색’(Afrum, White·1966) 크로스 코너 프로젝션. /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은 그가 40년째 짓고 있는 사막 천문대 ‘로덴 크레이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LED 라잇을 사용한 2013년 작품‘숨 쉬는 빛’(Breathing Light).
‘빛’을 전시하고,‘공간’을 보여주며, 완전한‘암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제임스 터렐 회고전(James Turrell: A Retrospective)이 LA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 지난 26일 개막됐다.‘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유명한 제임스 터렐(70)은 애리조나 사막에 짓고 있는 천문대‘로덴 크레이터’(Roden Crater) 프로젝트로도 널리 알려진 LA 출신 작가로, 이번 라크마 전시(5월26일~내년 4월6일)와 함께 휴스턴 미술관(6월9일~9월22일)과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6월21일~9월25일)에서도 그의 작품전이 열리고, 메릴랜드의 이스턴 아카데미 미술관(4월20일~7월7일)과 이탈리아의 빌라 판자(10월24일~내년 5월4일)에서도 회고전이 열리는 등 올해부터 내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의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계속된다.
특히 라크마 전시회는 한인 2세 큐레이터 크리스틴 Y. 김씨가 기획한 것으로, 터렐의 50년 예술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50여점의 작품을 2개의 전시관에 신선하게 정리해 주류화단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터렐의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 해도 좋을, 인간의 시각을 통한 지각의 반응과 거기서 나타나는 육체적 변화, 더 나아가 영혼의 감흥까지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예술이다. 관람객들은 약 10개의 방으로 구성된 공간에 들어가 빛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이미지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어떤 갤러리에는 혼자 혹은 두 명, 또는 대여섯 명만 제한적으로 들어가 5~20여분 동안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특히 레스닉 파빌리온에 마련된 3개의 방은 모두 예약이 필요하거나 기다려야 들어가 볼 수 있는 전시물로서, 이 중에서도 원구형 체임버 ‘지각의 방’(Perceptual Cell)에서 경험할 수 있는 ‘라잇 레인폴’(Light Reignfall)은 한 사람이 들어가 12분간 누운 채 빛을 체험하는 작품으로 입장료가 성인 45달러(멤버 15달러)이고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현재 9월 중순까지 예약이 차 있으나 전시가 내년 4월까지이므로 시간을 두고 예약하면 될 것이다.
바로 옆에 설치된 ‘어둠의 방’(Dark Space)은 완전한 암흑을 경험하게 해주는 곳으로 두 사람씩 들어가 최대 8분까지 어둠을 향유할 수 있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망막에 맺히는 것이 없고 눈을 감으나 뜨나 같은 상태,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는 암흑을 체험하게 된다.
한편 브로드 미술관(BCAM)에서는 2층 전체를 10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다양한 빛의 설치물을 전시하고 있다. 초기작품인 ‘흰색’(Afrum, White)과 ‘녹색’(Juke, Green)의 프로젝션을 거쳐 ‘홀로그램’ ‘웨지웍’(Wedgework), ‘크로스-코너’ 프로젝션, ‘와이드 글래스’ 등 시각뿐 아니라 공간감각에도 도전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아주 서서히 변화하는 빛과 색채의 파동을 느끼며 한동안 서 있다 보면 온 몸이 빛에 잠기는 듯 느껴지면서 일종의 명상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태초의 빛을 생각하게도 하고, 미래의 우주적인 빛을 느끼게도 하며, 종교적 영감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는데 작가의 의도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자각이다.
따라서 터렐의 작품은 일반 미술작품처럼 그냥 훌쩍 보고 지나가서는 의미가 없으므로 시간을 두고 전시장마다 머물면서 다닐 것을 권한다. 되도록이면 혼자 가서 경험하는 것이 더 좋겠다.
한편 터렐이 40년째 짓고 있는 ‘로덴 크레이터’ 천문대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모형과 사진, 드로잉, 비디오 등이 레스닉 파빌리온 전시관의 다른 한쪽에 전시돼 있다. 고대인들처럼 인간이 맨 눈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지어진 이 천문대의 위대함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디오 영상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
제임스 터렐은 포모나 칼리지에 다니던 1960년대 중반,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분사되는 한 줄기 빛을 보는 순간 ‘빛을 단지 사물을 보게 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빛 자체를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독창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학부에서 지각심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했고 클레어몬트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불과 24세 때 패사디나 아트 뮤지엄 전시회를 시작으로 지난 40여년간 전 세계의 대형 뮤지엄에서 초대전을 열며 빛과 공간을 분할하는 작업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다.
한국서도 최근 강원도 문막 산자락에 개관한 한솔뮤지엄이 터렐의 작품 4점을 선보이는 특별 전시관을 따로 지어 공개하고 있다.
제임스 터렐 회고전은 전시 특성상 한 번에 제한된 수의 관람객을 들여보내므로 예약을 꼭 하는 것이 좋다. 전시회 티켓은 25달러, ‘퍼셉추얼 셀’(Perceptual Cell) 45달러.
lacma.org/turrell (323)857-6010라크마는 올 여름(7월5일부터 8월30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까지 오픈한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