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유럽의 교회는 성경의 일부 구절에 근거해 여성을 성가대에 세우질 않았다. 하지만 성가대의 화음과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여성의 고음이 필수였을 터. 그래서 남성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목소리를 지닌 어린 남자 아이들이 ‘보이 소프라노’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며 여성들의 고음을 대신했다.
맨하탄 세인트 토마스 콰이어 스쿨 5학년에 재학 중인 조세진(사진·10)군은 이런 옛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보이(Boy) 소프라노 중 한 명이다. 영국 성공회가 운영하는 세인트 토마스 콰이어 스쿨(St. Thomas Choir School)은 인근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할 수 있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특수 목적의 사립학교.
학생들은 성가대원 자격으로 주중과 주말 예배에 서는 것은 물론 1년에 수차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펼친다. 그래서 흔히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빈 소년·소녀 합창단과 비교가 되곤 한다. 3학년부터 8학년까지로 구성된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엄격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나 배울 법한 영국식 예절을 배우기 때문에 식사 중에 어른이라도 곁에 오면 일제히 일어날 정도. 그리고 영화 해리포터에서나 접할 수 있는 망토식 옷을 교복으로 입는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잠깐 외출을 통해서 가능하고, 전화는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외에는 불가능하다. 또 프랑스어, 라틴어는 현지인 선생님이 가르치고, 컴퓨터 강의는 MIT 졸업생이 맡을 정도로 사실 평범한 학교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은 최상의 목소리 유지와 함께 우수한 학업 성적까지 낼 수 있도록 학교 측의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는 셈이다.
입학 절차는 물론 까다로웠다. 3학년을 앞둔 2010년 가을 입학 자격을 얻은 조 군은 “보이스(voice) 퀄리티에 대한 테스트를 통과한 뒤 2박3일간 합숙하며 단체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검증받았다”며 “이후에도 1, 2학년 때의 성적과 추천서, 청음 테스트 등 엄청난 시험과정을 통과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조군과 함께 입학한 동기는 4명에 불과했고, 심지어 그 다음해인 2011년엔 마땅한 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측이 신입생을 한 명도 뽑지 않기도 했다. 현재 전교생은 약 30명.
조군의 음악적 재능은 사실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현재 오페라가수로 활동 중인 아버지(조형식씨)와 피아니스트인 엄마(김미라씨) 사이에서 태어나서였을까? 조군은 4세 때부터 아빠가 부르던 오페라를 쉽게 따라해 부모를 놀라게 했고, 이후 세 옥타브 위의 음정을 노래할 수 있는 음역을 점차 갖췄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음악 영재’ 소리를 들어왔다.
아버지 조씨는 “최근에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오디션을 통과해 예배와 다양한 콘서트 공연에서 솔로를 맡기도 했다”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조군의 꿈은 의외로 훌륭한 가수가 아닌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조군은 “음악은 직업이 아닌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의 학교생활은 훗날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며 “그 대신 아픈 사람들, 그리고 아프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사실 세인트 토마스 콰이어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 대부분은 8학년 졸업 후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 음악가가 아닌 길을 걷는다. 실제 음악을 주업으로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지만 조군은 “그래도 학교에 다니는 동안엔 내 목소리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조군의 목소리는 맨하탄 세인트 토마스 교회(1W 53가)에서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 오후 5시30분에 들을 수 있고, 일요일 오전 9시와 11시, 오후 4시에는 예배로 만날 수 있다.
<함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