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퀸즈칼리지 화학과 교수·재미과학기술자 협회)
물질을 이루는 근본 구성 요소는 무엇이며 그 변화는 왜 일어나는가?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이러한 질문과 호기심은 인류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고 그 이유도 다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연금술을 들 수 있다.
값싼 금속 혹은 다른 물질로부터 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부로의 직결이었다. 혹자에게는 신의 섭리를 알아내는 것의 상징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자연의 신비로운 법칙을 알아내는 경로였다.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이집트, 중국, 인도, 아랍, 그리고 유럽에 걸쳐 ‘금을 만든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어졌다. 흙, 물, 불, 바람의 4원소가 모든 물질을 이루고 그 결합 방식과 정령의 역할에 의해서 다른 물질이 형성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그것은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비록 연금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가장 어리석은 인류의 노력 중의 하나였지만 그를 통해 이뤄진 경험적인 지식과 방법론들은 근대 화학의 모토가 되었다.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화학적인 변화에서 결코 변할 수 없는 100여개의 기본적인 원소가 거의 확립됐고(불행히도 혹은 다행이도 금도 그런 원소중의 하나다), 이제 화학은 그러한 원소들의 결합으로 이뤄진 각종 분자들의 생성과 변화를 실험, 이론, 그리고 모델들을 통해 연구하는 방대하고 필수적인 과학 분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비록 연금술이 불가능함이 입증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유용한 참된 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화학은 다른 어떤 과학보다도 분자세계의 리얼리즘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 비하면 대중에 호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현실적인 복잡성이 참된 매력이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분자들을 만들고 물질들의 분자적인 특성들을 분석하는 역할은 화학에 있다. 이를 통해 신물질 개발, 에너지, 그리고 질병퇴치에 지금까지 기여한 예는 헤아릴 수 없으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흔히 화학이라고 하면 실험실에서 플라스크와 비이커 등으로 냄새나는 화학물질을 섞고 가열하는 것만 연상하기 쉽다. 분자들간의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손쉬운 방법이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일반화학 실험에서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적 단순한 실험들은 실제 연구에 비유한다면 걸음마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실험을 많이 하는 유기화학에서도 첨단의 자기공명(NMR) 기기와 분광학(Spectroscopy) 기기들을 이용한 분석이 항상 필요하며 컴퓨터 계산을 이용한 이론적인 분석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화학 연구자로서의 참된 재능을 그것도 앞으로 올 미래를 위해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학은 방대하고 역동적이기에 과학에 대한 진지한 열의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맞는 영역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미국 화학협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전문 연구 저널만 해도 거의 50여개에 달한다. 이중에서 반 이상이 각 세부 분야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재생 에너지, 신소재 합성, 그리고 신약 개발을 위해 실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주요 연구들이 화학 저널들을 통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경제적인 가치를 떠나서 순수 과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반세기 이상의 연구를 통해 개별적인 분자나 균일한 물질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이해돼 있다. 하지만 복잡하고 불균일한 물질들이나 생체 내에서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러한 분자적인 현상들과 거시적인 현상들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아직도 큰 숙제로 남아있고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진보된 화학적 방법론과 도구가 필요하며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대의 화학은 능숙한 실험 능력만큼 수학, 컴퓨터, 생물, 혹은 물리 분야의 재능을 요구하는 종합적인 과학이며 우리 주변의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현실적인 답을 제공하는 과학이다.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고 그러한 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것을 적극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