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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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물자 원조선박 오자‘El Barco!’

2013-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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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 샌디에고 미션

1769년 11월7일 지금의 금문교 입구까지 탐험한 포르톨라 주지사 일행은 발길을 돌려 그들이 북진할 때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그대로 남하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770년 1월24일 출발지였던 샌디에고로 귀환하였다.

1770년 1월 말 몬트레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산디에고로 돌아온 포르톨라는 당연히 질책을 받았고 세라 신부도 “이는 로마에 갔다가 교황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것과 같다”며 비난했다. 그동안 샌디에고 미션은 힘들게 꾸려 나가고 있었다.

세례를 받은 인디언들은 교회 근처의 농가나 인디언 부락에서 신앙심을 키워 갔는데, 여자나 아이들은 교회의 사택에서 합숙생활을 했고 세례를 통해 결혼한 부부들은 인근의 오두막이나 흙벽돌집에서 생활했으며 교회의 종소리에 따라서 그들은 기도하고 식사하고 일을 했었다.


당시 인디언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미션은 실패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스페인의 원조를 받는다는 게 아주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션이 하나 생기면 곧바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성당이 하나 건립되면 집과 창고 등의 건물들도 함께 건축되었고 농장과 함께 목장도 갖추어야만 했는데, 그동안 샌디에고에서는 가축과 양떼를 방목하여 키우는 인디안 카우보이들도 생겨났으며, 그들 인디언 카우보이들은양의 털 깎는 작업부터 도살까지 모두 다 해냈고 고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급되고 가죽은 다른 물품과 교환되기도 했었다.

1770년 3월19일 마침내 그렇게 고대하던 원조 물자 선인 샌안토니오호를 발견한 세라 신부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El Barco! El Barco! Viva la California! ” (배다! 배다! 캘리포니아 만세)” 라고 환호성을 질러 댔다고 당시의 기록은 전한다.

샌디에고 미션에 도착한 샌카를로스와 샌안토니오 호 두 척의 배에는 몬트레이 이주자와 건축 기술자, 그리고 군인들 농사기구와 건축용 자재와 연장들, 인디언을 위한 선물 등의 물자가 실려 있었다. 이 배들은 바하 캘리포니아의 라파즈(La paz:‘평화’라는 뜻) 항구를 출발해 이곳에 도착했다. 세라 신부가 샌안토니오 호를 타고 다시 몬트레이를 향해 출항한 날짜는 1770년 4월16일이었다.

한편 다음날인 4월17일 포르톨라 주지사가 이끄는 육지 탐험대도 그들이 탐험했던 길을 따라 몬테레이로 다시 향하였다. Pedro Fages 대위를 비롯하여 12명의 전문 탐험가들과 7명의 특수 수색대 요원들, 5명의 바하 캘리포니아 출신의 인디언들, 그리고 크레스피 신부가 이들을 다시 동행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마련해 놓았던 1차 탐험길을 따라 36일 동안 전진하여 마침내 1770년 5월 24일에 몬트레이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John Kim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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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46-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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