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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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카브리요 일지에 쓰인 몬트레이 발견

2012-1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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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9월20일 선발대의 페르난도 리베라 대위는 부하들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1542년 최초로 캘리포니아 바닷길 탐험에 나셨던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후안 로드리게즈 카브리요의 일지에 쓰였던 명칭 ‘푼토 데 피노’(Punto de Pino: 소나무 만)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몬트레이(왕의 산이란 의미) 시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리베라 대위의 눈에는 1602년 탐험가 세바스찬 비스카이노가 일지에 기록한 수많은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의 항만으로 보이지 않아, 몬트레이가 아닐 것이란 생각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비스카이노는 자신의 일지에서 이 지역을 “모든 바람을 막아주는 대형의 천연적인 항구로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와 주위에는 풍부한 수와 울창한 나무숲, 그리고 친절한 원주민과 낙농을 위한 초원과 비옥한 토지가 있는 환상적인 천연 항구”라고 소개했는데, 사실 현실과 다르게 너무 과장된 것이었다.


한편 1769년 9월30일 몬트레이 인근에 도착한 본대의 호세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Jose Gaspar de Portola) 주지사도 언덕에 올라 몬테레이를 내려다보았으나 짙은 안개에 싸여 있는 몬트레이의 모습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이래 78일째 되는 날에 몬트레이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짙은 안개에 싸인 해안가를 잘못 인식하는 바람에 몬트레이를 지나치게 되었다.

크레시피 신부는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769년 10월7일 근처를 수색하고 다니던 주지사는 그럴듯한 항만이 눈에 띄지 않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비스카이노가 일지에 기록했던 몬트레이 혹은 푼토 데 피노의 모습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탐험대는 그 지역을 벗어나 좀 더 북쪽으로 탐험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 후, 그들은 해안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곳부터는 오늘날의 1번 Cabrillo Hway가 이들의 발자취를 계속해서 뒤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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