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이 아니라 천국같습니다”

2012-12-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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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탄서 미국 온 탈북자 김영식씨
동상으로 발가락 절단 등 숱한 위기


“한인 온정으로 행복 찾아”
워싱턴 후원자들에 감사


“천국에 온 것 같습니다”
미국 생활이 어떠냐 묻자 탈북자 김영식(69) 씨는 주저 없이 말했다.
함경북도 회령군 남양이 고향인 김 씨는 1985년 중국으로 탈북해 5년을 보내고 구소련에서 90년부터 10년간 지냈다. 사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얼마 전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곳이 키르기스탄이었다. 살았다기보다는 숨어 도망 다니는 인생이었다. 경찰에 쫓기며 추운 겨울에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잤다. 결국 발에 동상이 걸렸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자 점점 악화됐다. 나중엔 썩어 들어갔지만 치료할 돈은 전혀 없었다.
“약 8개월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영식 씨의 첫 마디는 ‘난 버려졌다’는 말이었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탈북자들은 수고비를 내고 한국으로 갔는데 돈이 없는 자신만 남았다는 뜻이었죠. 꼭 데려오겠다고 무조건 약속을 했습니다.”
미주탈북자선교회 마영애 대표의 증언이다. 마 대표를 아는 탈북인이 김 씨와 먼저 통화를 해 마 대표에게 연락하도록 주선을 했다. 김 씨의 위급한 사정을 알게 된 마 대표는 수잔 숄티 등 미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눈물로 호소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김 씨는 죽을 수도 있다고. 꼭 미국에 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심전심이었다. 진정서가 국무부에 올라갔다. 그리고 김 씨 치료와 수송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와중에 마 대표는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치료비 모금 운동을 벌였다. 여러 한인들이 몇 백 달러씩 정성을 보였고 그 돈은 바로 김 씨에게 치료비로 보내졌다. 김 씨는 아무런 신분증이 없어 키르키스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모 한인이 심부름을 했다. 발가락을 두 개나 자르는 수술 과정 중에 김 씨는 패혈증으로 사선을 넘나드는 위기도 겪었다.
“어느 날인가 이민국에 가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공항으로 나오라고. 영문을 몰랐는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항에 나갔던 김 씨는 그러나 첫 시도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1944년생인 김 씨에게 일정 나이 이상은 출국이 안 된다는 법이 적용된 탓이었다. 이후 김 씨는 두 달 간 홍역을 더 치른 뒤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최종 정착지는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 시티였다.
김 씨가 유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대학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철홍 목사 등 지역 한인들의 역할이 컸다. 김철홍 목사는 마 대표가 주소록에서 무작위로 찾아내 전화한 사람이었다. 김 목사는 전화를 받은 당일 직접 교인들과 김 씨를 찾아갔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처음 난민으로 미국에 온 탈북자들은 아무 것도 몰라 혼자 며칠씩 굶는 경우도 있었다.
김 씨는 며칠 전 마영애 대표의 아들인 최효성 씨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에 왔다. 다른 탈북자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회포도 풀었다.
“그날 너무 좋아 오랜만에 춤을 다 췄다”는 김 씨는 정부 보조금 등 약간의 수입으로 살고 있지만 힘이 닿는 대로 마 대표를 도울 생각이다. 마 대표의 헌신적인 노력이 아니었으면, 또 김철홍 목사 등 한인 크리스천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행복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고 있다.
마 대표는 “당연한 얘기지만 탈북자 지원 사역은 ‘생명’을 구하는 사역 아니냐”며 “커미션을 주지 않으면 가차 없이 이들을 외면하는 인권단체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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