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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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스카데로’는 탐험대 마차가 수렁에 빠진 곳

2012-1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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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82]

1769년 9월8일 지금의 샌루이스 오비스포에서 야영을 마치고 북쪽을 향하여 출발했던 최초의 캘리포니아 탐험대 본진은 가축과 마차가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었다. ‘수렁’을 스패니시로 ‘아타스카데로’(Atascadero)라고 부르는데 아직도 이 일대를 그렇게 부른다.

그 후 그들은 떡갈나무 숲을 지나면서 그 지역을 ‘떡갈나무의 통로’라는 뜻으로 파소 노블레스(Paso Robles)라고 지었는데 이 이름도 아직까지 사용되는 이름이다.

1769년 9월15일 그들은 강의 상류로 추정되는 개울을 따라 북쪽 계곡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개울의 진원지가 되는 커다란 두 개의 호수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 호수 중 하나를 ‘진원지 호수’라는 뜻으로 라고 데 나시미엔토(Lago de Nacimiento)라고 지었고, 또 북쪽 호수의 이름은 라고 데 샌안토니오(Lago de San Antonio: 성자 안토니오 호수)라고 지었다. 또한 그 호수로부터 북쪽으로 향하는 물줄기는 샌안토니오 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탐험대는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만나는 인근에서 인디언 부락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파드레 크레스피 신부는 당시 상황을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는 인디언 마을로 조심스레 다가가서 준비해 온 선물들을 인디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신들을 타못카(Tamo-tka) 부족이라고 소개한 이 인디언들은 선물들을 이리저리 보다가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을 환영하였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인디언 추장은 우리 일행을 ‘곰 치료사’라고 불리는 인디언 무당들에게 데리고 갔는데, 당시의 이들은 수호신으로서 곰을 숭배하는 인디언 의사들이었다. 이 곰 치료사들은 북과 방울을 사용하여 죽은 영혼들과 교류를 했고 이들은 요란하게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어 죽은 영혼을 깨운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주일가량 인디언 마을에 머물면서 주위를 탐사했는데 나는 이 지역이 미션지역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후 지금의 몬트레이 카운티 내의 홀론(Jolon; 동굴, 혹은 커다란 구멍이란 뜻의 스패니시) 타운에는 1771년 7월14일, 이곳을 찾은 후니페로 세라 신부에 의해 엘카미노 레알 세 번째로 건설된 미션 샌안토니오 데 파두아(Mission San Antonio de Padua)가 생겨났다.

초창기의 성당 내의 미션구역에는 세례 받은 178명의 인디언 신자들이 거주했으며 그 후 점차 불어나기 시작하여 1805년에는 1,300명가량의 신자들이 미션구역에 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834년 랜초시대에 접어들면서 성당의 신자는 150명 정도로 감소했으며, 1845년 P?o Pico 멕시코 주지사가 캘리포니아 내의 모든 성당 건물을 매각 처분할 당시에는 미션 구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방치되기도 했다.

그 후 1894년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라햄 링컨에 의해 이 미션은 가톨릭 교회에 반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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