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한인교회, 60년사 ‘생명의 샘터’ 발간
2012-10-31 (수) 12:00:00
마르지 않는 샘. ‘기독교’라는 신앙을 선택하고 순례의 길을 밟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라는 영원한 생수를 주는 교회…
워싱턴 지역 최초의 한인 신앙 공동체인 ‘와싱톤한인교회’가 1951년 설립 때부터 2011년까지의 기록을 담은 60년사를 발간했다.
‘생명의 샘터’라는 이름으로 나온 60년사는 1988년에 출간된 35년사의 뒤를 이어 두 번 째로 정리된 와싱톤한인교회의 역사. 2008년 박영환 장로를 편찬위원장으로 선출하고 그해 5월 첫 편찬위원회 모임을 가진 후 지난 10월7일 발행될 때까지 꼬박 4년하고 5개월이 걸렸다.
와싱톤한인교회 60년사에 교계 밖 한인들의 관심도 몰리는 이유는 이 교회가 민족적 아픔을 겪고 있던 6.25 전쟁 와중에 태어 역사의 증인 역할을 한 때문이다. 교회 설립 멤버였던 김태묵 목사, 박원규 평신도 대표, 고병철 유학생 대표를 포함해 당시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성도들의 자취는 워싱턴 한인 이민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삶은 본인들도 모르게 현재의 자랑스러운 워싱턴 한인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필요했던 주춧돌이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지만 곧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소식이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들려왔다. 당시 한인은 대사관 직원이나 가족, 유학생, 그리고 약간의 이민자가 전부였다. 이들은 치열해져가는 한국동란을 걱정하며 1950년 겨울부터 정기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는데 숫자가 늘어나면서 훗날 한인회 조직의 모체가 됐다.
이런 가운데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믿음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는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기도 모임을 따로 갖기 시작했고 이 모임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기꺼이 참여했다. 그러던 중 1951년 김태묵 목사가 하와이에서 워싱턴으로 이주해왔고 한인교회 설립에 뜻이 모아졌다. 첫 예배는 같은 해 10월14일 오후 3시에 워싱턴 DC의 북서 지역 16가와 P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파운드리교회’에서 가졌다. 인원은 32명, 헌금은 17.05달러였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는 1978년까지 파운드리교회를 이용하다가 1984년 현재의 맥클린 교회당을 완공하고 입당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담임은 2대 오창희, 3대 황재경·김성덕, 4대 선윤경, 5대 박종렬, 6대 조영진 목사를 거쳐 7대 김영봉 목사가 맡고 있다.
김영봉 목사는 발간사에서 “(와싱톤한인교회의) 역사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이 앞으로 이어질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아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박영환 편찬위원장은 “역사는 자아발견의 귀한 도구”라며 “와싱톤한인교회 60년사가 내일을 향한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크나큰 자원이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60년사는 35년사를 재구성해 1-5장으로 분류했고 후반부 5장은 1986년부터 2011년까지 다섯 번에 걸쳐 실시된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나누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생생한 사진들이 첨부돼 있다.
와싱톤한인교회의 발전을 주도한 5개년 장기 계획은 1985년 1차가 시작됐고 1993년 2차, 1997년 3차, 2003년 4차가 진행됐으며 지교회인 매나세스 캠퍼스는 2008년에 문을 열었다.
와싱톤한인교회 60년사 편찬위원으로는 김영봉 목사, 박대준 목사, 김병남 장로, 박철 장로, 박완봉 집사, 이명지 집사가 참여했다.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