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이야기 ①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66]
1769년 지금의 위티어(Whittier)길인 좁은 협곡을 따라 하루 평균 6마일에서 12마일을 전진하던 스페인 탐험대는 8월2일 오늘날의 라브레아캐년(La Brea Canyon)과 샌개브리엘 밸리 사이의 LA 강가에 도착했다.
현재의 노스 브로드웨이 길의 엘리시안팍이 있는 자리에 캠핑을 하던 탐험대는 소그룹으로 나뉘어 정찰에 나섰다가 남쪽에서 풍요롭고 기름진 넓은 평원을 발견했는데, 프래이 후안 크레스피 신부는 이 지역을 ‘Nuestra Senora la Reina de Los Angeles de Porciuncula’ (포르션쿨라의 성스러운 천사들의 우리 여왕님)
이라고 이름 지었다. 여기서 로스앤젤레스란 이름이 비롯됐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후에 이 기록을 토대로 12가정이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형성하는데, 그들의 정착지가 오늘날의 올리브 스트릿 지역으로 1953년 주립 역사보존 공원으로 지정됐다.
최초의 LA 이주 배경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레스피 신부의 기록을 통해 기름진 옥토를 확인한 펠리페 데네베2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781년 2월2일, 당시 샌디에고 요새와 샌타바바라 요새에 주둔중인 군대의 식량조달을 위해서 LA지역에 농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농부들을 모집했다. 여기에 응한 12가정은 멕시코 소노라(Sonora:‘ 크게 울려 퍼지는’이라는 뜻의 형용사)의 로스알라모스(Los Alamos:‘ 포플러 나무들’이란 뜻) 마을 출신이었다.
이들은 LA까지 호위한 군관 중에는 39세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세펄베다(Francisco Xavier Sepulveda)대위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지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 나, 세플베다는 아내인 Maria Candelaria de Redondo와 6명의 자녀와 함께 이 이주여행에 동참했다.
나의 맏아들인 Juan Jose는 올해 16세의 소년이지만 아주 든든한 장남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멕시코 Sonora의 Los Alamos 마을에서 출발하여 멕시칼리를 경유하여 높은 산맥을 넘고 넓은 사막을 지나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7개월이라는 긴 여행 끝에 마침내 8월 18일 샌개브리엘 미션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행 도중 천연두에 전염이 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곳에서 17일간이나 격리 수용됐다”
<다음주 계속>
John Kim의 Spanish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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