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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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품은 곳, 유럽에 취하다

2012-06-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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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7개국 9박10일 여행기 ①

▶ 카프리섬 정상 오르니“여기가 지상낙원”

유럽여행은 누구나의‘로망’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유럽을 여행하기를 꿈꾸고 소원하며 기다린다. 한국인들뿐 아니라 미국인도,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나만의 유럽을 발견하고 경험하기 위하여 휴가를 모으고 짐을 꾸리고 돈을 쓴다. 그것은 일종의‘뿌리 찾기’인지도 모른다. 현대 서양 문명권에서 살고 있는 지구촌의 모든 나라는 그 문화와 역사, 건축과 예술의 뿌리를 유럽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또 가장 엄두가 안 나는 것이 유럽여행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조차 유럽만큼은 직접 계획을 짜고 여행하기를 두려워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데다 가봐야 할 곳도 너무 많고, 언어와 문화, 화폐와 풍습이 낯설고 물설어서 솔직히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여행 만큼은 관광사들의 패키지 투어가 인기를 끄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주관광 박평식 사장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스페인, 그리스/터키를 포함해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한인의 숫자는 총 3,000여명, 다른 관광사들 통계까지 합치면 북미주 전체에서 약 5,000명 정도가 매년 패키지 투어를 통해 유럽구경을 하고 있다. 유럽여행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된다는 아주관광 서유럽 투어를 지난 5월 말 다녀왔다. 먹고, 자고, 구경하고, 사진 찍고… 아무 것도 신경 쓸 일 없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7개국 16개 도시를 돌아다녔던 10박11일의 일정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각지서 온 50여명 한 팀 되어 16개 도시 강행군
중세모습 오롯이 간직, 작은 길 하나에도 역사가…
2시간 기다린 에펠탑, 10분 만에 내려올 땐 아쉬움

서유럽 관광의 출발지는 영국 런던의 히드로 공항이다. 사람들이 LA뿐 아니라 전미국과 캐나다에서 오기 때문에 각자 출발, 런던 공항에 집결해 일정을 시작하게 된다. 첫날 런던 시내관광을 마치면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와 베르사이유, 그리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지나 이탈리아로 내려가 북부 밀라노에서부터 피렌체, 베니스를 거쳐 로마를 보고 남부 나폴리와 폼페이, 카프리 섬까지 돌아보는 강행군이다.
10박11일이라지만 가면서 하루, 오면서 하루 까먹고 온전하게 구경하는 날은 9일인데, 그동안 7개국(영국, 프랑스,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바티칸시국) 16개 도시(런던, 파리, 바젤, 루체른, 필라투스, 인스부르크, 파두츠, 밀라노, 베로나, 베니스, 피렌체, 피사, 로마,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를 돌아다니는 일정이 얼마나 타이트할 지는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핵심 관광지, 유럽의 진수만을 모아 전체를 훑는 코스로, 가이드에 따르면 유럽투어 중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한다. 사실 파리에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고, 두 시간 줄을 서서 올라간 에펠탑도 10분 만에 내려와야 하는 스케줄이라 엄청 아까웠지만 어쩌랴, 많이 보기 위해선 많이 포기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생각 같아선 도시 몇 개 줄이고 여유 있게 다니면 딱 좋겠건만 그런 패키지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한국 사람들은 가능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방문하기 원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이 집어넣는 스케줄을 만든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새벽 6시에 웨이컵 콜, 7시 아침식사 후 곧바로 출발하여 몇 시간씩 버스로 달리는 일정은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70세 넘은 노인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모습이고, 다들 큰 맘 먹고 온 여행인 만큼 열심히 따라다니며 하나라도 더 사진에 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결같이 하는 말은 “유럽여행은 젊어서 해야겠다”는 것이다. 일정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이런 문화와 유적을 좀 더 젊었을 때 경험했더라면 이후의 삶이 더 많이 아름다워지고 윤택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여왕 즉위 60주년·올림픽 준비 바쁜 런던은‘공사중’
럭서리의 극치 베르사유 궁전, 정원 규모도 상상 초월
스위스 루체른, 물가는 비싸도 어찌나 아름답고 깨끗한지…

우리 팀은 2명의 가이드 포함 53명이나 됐다. 대형 관광버스가 완전히 풀로 차는 만석이었고 손님들의 출신지도 토론토, 버지니아, 달라스, 애틀랜타, 휴스턴, 샌호제, 시애틀 등 참으로 다양했다. 오히려 LA에서 온 사람이 몇 팀 안 될 정도였고 한국서 방문한 가족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각지각층의 사람들과 열흘간 동고동락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지만 여행 중반이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 자연스레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되고 버스에서 앉는 자리도 대강은 정해지게 된다. 누가 얘기 안 해도 나이 많은 순서대로 앞쪽에 앉고 얼굴을 익히면서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분위기가 된다. 끝날 때가 가까워오면 헤어지기 아쉬워 몇몇은 와인과 수다 파티를 열기도 하는데 이런 게 단체여행의 즐거움이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말이다.

5월의 날씨는 너무 좋았다. 비 온다는 예보가 계속 있었지만 이보다 더 화창할 수 없는 날씨가 열흘간 계속됐다. 계절의 여왕, 연중 가장 좋은 시기라곤 해도 예고 없이 비가 뿌리는 곳이 유럽인데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오히려 아쉬울 정도였다. 가이드에 따르면 유럽관광은 7, 8월이 성수기지만 그때는 너무 무덥고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쾌적한 관광이 어렵다고 한다.


◆첫 날
이날이 가장 힘들었다. 미국에서 월요일 아침에 떠나 화요일 아침 런던에 도착하는데, 10~12시간 비행에다 시차 때문에 하룻밤을 꼬박 샌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관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런던을 돌아보는데 다행히도 다녀본 곳 중에서 런던이 가장 별 볼일 없다는 평. 피로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찬란했던 대영제국의 수도는 의외로 멋없고 맛없는 곳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런던 시내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와 올 여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곳곳이 공사 중이고 몹시 부산한 분위였다.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검 궁전,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이집트와 그리스 유적들로 가득 찬 대영박물관, 템즈강 건너 국회 의사당과 타워 브리지(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노래로 유명한) 등을 돌아보는데 그야말로 주마간산, 하지만 더 잘 보여준다고 해도 ‘노 땡큐’할 만큼 지친 상태에서 호텔에 들었다.


◆둘째 날
맛있는 김밥 도시락을 먹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해저로 잇는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입성, 도착하자마자 루브르 박물관으로 달려가 주요 작품들을 감상했다.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니케 여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당연히 모나리자 앞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운집해 가까이 갈 도리가 없었고, 사실 가고 싶지도 않아 다른 그림들이나 열심히 구경했다.

호화로운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은 과연 호화로움의 극치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특히 정원은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방대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날 저녁 옵션으로 에펠탑 전망대와 세느강 유람선까지 뛰느라 아주 밤늦게야 돌아왔다. 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 유럽은 밤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셋째 날
세느강 한가운데 있는 시테섬은 파리 즉 프랑스가 시작된 곳이다. 이 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180년 동안 지어 1345년 완성된 고딕 건축물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때문에 더 유명해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을 돌아보던 중 잠깐의 자유 시간을 이용해 퐁뇌프 다리를 건너 ‘셰익스피어 서점’을 일별하고 왔다. 헌책방 명소이며 문학인들의 사랑방이고 영화(Before Sunset)에도 등장해 잘 알려진 곳인데 어떤 투어에도 포함되진 않는 곳이다.

점심식사 후 에뚜알 광장의 개선문과 명품 샤핑가 샹젤리제 거리를 딱 20분간 돌아보고 버스에 올라야했다(남편들이 모두 안도하는 표정). 이어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타고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 바젤에 도착, 깨끗하고 시크한 ‘도린트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숙소로, 모던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와 제대로 서브 받았던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모두 대단히 흡족했다.

저녁 먹고도 해가 훤해 호텔에서 주는 무료 승차권을 가지고 전차를 타러 나갔다. 스위스의 3대 도시이며 아트페어로 유명한 바젤은 너무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 독일로 흘러가는 라인강을 바라보며 여행 중 드물게 고즈넉한 시간을 보냈다.


◆넷째 날
이른 아침 알프스 산맥의 한 봉우리인 필라투스 산(2,132미터)에 올랐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내려올 때는 톱니바퀴 열차(경사 52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기차란다)를 탔다. 정상에 오르니 청명한 공기에 온 사방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굽이굽이 펼쳐지는 봉우리와 계곡들, 마을, 호수들이 다 내려다보였다. 오르내리는 도중 펼쳐지는 알프스 경치 또한 일품이고, 방목해 키우는 소들의 방울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다.

바젤에서 동남쪽으로 55마일 떨어진 루체른(Lucerne)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김치찌개(24유로)를 파는 곳이다. 물가가 그렇게 비싸다는 데도 도시가 어찌나 깔끔하고 아름다운지 세계 5위 안에 드는 인기 관광지다. 아름다운 호수와 고풍스런 건물들, 암벽에 조각한 ‘빈사의 사자상’과 800년 된 카펠교 등이 명물이다. 여기서 몇 사람이 롤렉스시계를 사는 동안 우리는 루체른 호수의 백조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길목에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이라는 초미니 국가가 있다. 면적이 160평방km(강화도의 반)이고, 인구가 3만6,000명에 불과하지만 GNP는 10만달러로 세계 최고인 이 나라는 다국적 기업들의 탈세와 돈세탁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도착했다. 동계올림픽을 1964년과 76년 두 번이나 치른 이 곳은 역사의 도시, 관광의 도시이며 겨울엔 스포츠의 도시다. 인스부르크 중심가인 마리아 테레사 거리로 나와 왕궁과 개선문, 황금기와 발코니 등을 둘러보았다. 금요일 저녁이라 한껏 멋을 내고 몰려나온 젊은이들이 곳곳의 카페와 바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도 부럽게 바라보았다. <아주관광 후원>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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