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하나님 어떻게 안 전해요?”
2012-06-08 (금) 12:00:00
중국 도문에서 장애인 사역을 감당하던 고순영 선교사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번에 필리핀 선교사 신분으로 왔다. 장애인을 섬기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저를 살려주신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려주는 보화입니다.”
고 선교사는 지금도 암이 완치되지 않아 매년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 1987년에 발견하고 나았다가 2002년 재발해 폐와 목, 성대로 퍼졌던 암은 감사하게도 지금은 더 이상 큰 심술을 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흔 네 살의 나이에, 성치 않은 몸으로 10여명의 장애아를 돌보는 일이 너무 벅차다. 하지만 장애 아들을 두었던 어머니로서 그것이 소명임을 깨달았는데 어쩌랴? 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이 현장에서 넘쳐나는데 어떻게 힘들다고 그만둔다 할 수 있을까?
아들 고관필 씨는 지난 해 10월13일 44년의 생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영집, 고순영 선교사 부부를 장애인 사역에 뛰어들게 한 직접적인 동기였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갔지만 소명은 여전히 남아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중국선교는 2010년 비자가 연장이 안돼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옮기고 ‘Koh’s Mission for Recuperation, Inc’라는 이름의 법인체를 세웠다. 운영비가 많이 들어 현지 천주교회에 부속된 특수교육기관으로 등록했다. 현재 데리고 있는 아이는 10명. 10대 청소년 장애인들이다. 요즘 민데즈라는 지역에 이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될 집을 짓고 있다. 완공은 6월 말로 예상된다.
“일종의 그룹홈이죠. 내 자식처럼 키우고 있습니다. 생활 훈련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사하고 밥먹고... 이런 평범한 일도 이 아이들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그룹홈 ‘은혜원’이 지어지고 있는 곳은 민가가 전혀 없는 지역이다. 먼저 시작하면 마을도 생기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환경이 워낙 열악해 수도, 전기 등 모든 걸 옆 마을에서 끌어와야 할 정도다. 얼마나 벌레가 많고 습한지 지갑, 베개, 신발 모두 곰팡이가 슬어있다. 열대 지방이라 과일은 많아도 정작 먹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비라도 오면 두 노인네는 몸이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런 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그래도 지금까지 남편은 안식년을 모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의 중간 글자를 빼면 ‘고집’인데 그대로예요.”
남편 고 목사는 환갑잔치 때 “왜 우리 가정에 장애아를 보내주셨는지 알겠다”며 고백한 사람이었다. 가게를 다 정리하고 헌신한 이후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거제도 장승포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먼저 봉사를 시작했다. 아들보다 훨씬 상태가 심한 아이들을 보며 고 선교사 부부는 회개했다. “이 아이들을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재헌신했다.
현재의 사역지에는 교회도 세울 예정이다. 부지는 어떤 독지가의 도네이션으로 구할 수 있었는데 4만5,000달러 정도 예상되는 공사비는 또 다른 문제다. 은혜원 관련 매달 운영비 2,000달러도 아직 준비가 안됐다. 그러나 걱정은 벌써 접어뒀다.
“아침에 눈을 뜨고 호흡한다는 사실만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고마운 하나님을 어떻게 안 전합니까?”
그룹홈 완공에 맞춰 이달 말 돌아가는 고 선교사는 목소리가 감격으로 자꾸 메였다.
(703)258-4567
thegracehome@gmail.com
후원금 보낼 곳
(고순영 선교사 후원금 명기)
Attn: Rev. Jimmy Kim
5005 Edenhurst Ave.
Los Angeles, CA 90039
<이병한 기자>